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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Feb 21. 2024

파묘 단상

잠실. 롯데시네마. 파묘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포와 망령의 오락이 주는 꽉찬 만족감(3.5)


한국 오컬트 영화에서 대중적인 오컬트 영화의 표본과 같은 영화가 나타났다. 전작 <사바하>나 <검은 사제들>과 비교하면 대중성을 끌어올리면서도 오컬트 장르의 공포성과 오락성까지 잡은 영화이다. 영화의 흐름을 보면 장르 중에서도 매니악한 오컬트 장르에 관객들이 익숙해질 수 있게 여러 장치들을 준비했다. 밑도 끝도 없이 부자인 박사장을 홀랑 벗겨먹기 위해 뭉치는 풍수사 상덕, 무당 화림, 장의사 영근, 법사 봉길의 모습은 케이퍼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조부의 묘지와 관을 마주하면 어느새 미스터리한 과거를 지닌 가문의 비밀을 파헤치는 추리 장르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오컬트의 문법이 기반이기에 추리 장르도 실상은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공포를 관객이 더 몰입해 보게 하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일단 마주하면 죄여오는 듯한 눅눅한 공포가 손끝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와 긴장되게 한다.

음양오행, 풍수, 토속신앙, 무가 등. 전작과 비교하면 오컬트 지식도 넓지만 깊이 있게 제시된다는 느낌은 아니다. 관객들에게 으스스하고 스산한 눅눅함과 공포를 주기 위한 수단일 뿐 오컬트 지식을 이해해야 더 깊이 있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근대사를 알고 있어야 더 이해하기 쉽다. 이 영화의 약점이라면 약점이 일본 제국주의와 토속신앙이 주요 소재로 제시되는 만큼 민족주의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영화의 오컬트적 공포가 친일파와 제국주의에 대한 구마이자 단죄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이 경우 오컬트적 공포는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아니라 분노해 극복해야 하는 공포가 된다.

근데 애초에 비인기 장르인 오컬트에 관객들이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사실 위의 약점은 단순히 단점이나 약점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관객들에게 오컬트적 공포를 조금이라도 더 쉽고 가볍게 맛볼 수 있게 하면서도 서사적 완결성은 갖출 수 있는 전략적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제가 한국의 민족 정기를 무속적인 방식으로도 끊기 위해 풍수적 관점에서 지혈에 철심을 박았다는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공포가 분노해야 하는 공포가 된다고 해도 이미 공포를 느낀 관객들이 두 공포를 구분하기 보다는 비슷한 공포로 느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을지도.

게다가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주는 몰입감에 더해 음향과 시각효과로 이해 불가능 공포와 분노 필요 공포는 구분하기 더 어려워진다. 단적인 예로 한국어 대사의 음향효과화이다. 최근 들어 한국 영화에서 배우들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논란이 있었고 이에 따라 한국어임에도 영화 속 상황에 따라 자막을 다는 추세가 늘고 있다. 하지만 <파묘>는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일본어 대사를 자막으로 명확히 보여주되 경문을 외거나 주술을 행하는 장면에서 한국어 대사를 음향효과처럼 활용해 오컬트적 공포를 배가시킨다. 여기에 자칫 잘못하면 싼티날 수 있는 귀신 분장이나 피와 같은 효과들은 어둑한 조명이나 연기와 안개 효과 등으로 전통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다른 감독도 아니고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만든 장재현 감독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미 감독님의 사적 감정 듬뿍 품고 있는 이에게 감독님의 고뇌 혹은 선택은 어떻게든 지켜드리고 싶다는 거다. 장난이고 진지하게 마무리 하자. 이 영화는 오컬트 장르가 좀 더 대중친화적인 장르로 인식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벼워 보일지라도 더 쉽고 효과적이며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오컬트적 공포. 오컬트를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라 허무맹랑한데다 지나치게 고어하게 보이거나 느껴져 어렵게 여길 대중에게 오컬트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어떤 체계적인 문법에 장르적 쾌감까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파묘>는 오컬트를 시작해보려는 어떤 누군가에게 가볍되 신선한 시작이 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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