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Mar 03. 2024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단상

압구정. 픽처하우스.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끝이라는 시작에서 지나간 감정을 가슴에 담으며

대학교 이전을 학창 시절이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 짧지만 삶의 어느 순간을 오랫동안 함께 한 경험은 흔히들 공교육이라고 하는 시기에만 가능한 경험이다. 그리고 사회에 진입하기 전 비슷한 또래가 모인 작은 공동체는 삶에서 보면 찰나와 같지만 여러 의미에서 되돌아보기 어려운 감정을 남긴다. 이불킥으로 침대를 어지럽힐 수도 있고 잊으려고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 댈 수도 있다. 어떤 감정이 되었든 학창 시절의 감정은 돌이키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을 저리게 한다.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시간을 갖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영화는 하나의 성장 영화이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영화이다. 영화에서 성장은 학창 시절 경험의 총체라 할 수 있는 학교 공간의 상실과 연결되어 있다. 학교 이전으로 이전하기 전 학교의 마지막 졸업생이 될 4명의 여학생. 친구들과 함께 한 모든 과거가 녹아든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졸업으로 돌아올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졸업으로 이제 학창 시절이라는 경험도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 거기에 물리적 공간 역시도 사라진다. 여학생들은 성인이 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그동안 미뤄온 감정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인다.


흔히 생각하는 일본의 하이틴 로맨스 영화는 아니다. 굉장히 차분한 분위기에서 각 여학생들이 어떤 과거로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지를 졸업식까지 남은 1일 동안의 일로 밀도 있게 보여준다. 일본 하이틴 로맨스 특유의 오글거림이 살아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학생들의 서사가 지나치게 담백하게만 보여주는 듯해 전체적인 영화의 텐션은 느슨하다. 그러다보니 특유의 오글거림에 공감하며 깊이 이해하게 되기 보다 순간적으로 몰입에서 벗어나고 허탈한 웃음을 짙게 된다. 일종의 현자 타임 같은 순간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선택하는 순간은 응원하게 된다. 누구나 학창 시절을 졸업하며 한 번은 그 시절의 감정을 정리하는 때가 있으니 말이다.

여학생들은 어떠한 의미에서 각자의 감정을 정리하고 성장을 한다. 물론 이들이 감정을 완전히 정리해 받아들인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순간 정리했다 생각한 감정이 다시 떠오르며 먹먹하고 답답하며 외로워지는 때도 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도 이 학생들은 이미 한 선택을 통해 천천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졸업을 하지 않으려는 소녀들은 결국 졸업을 해야 한다. 졸업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 끝내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과 같다. 그저 천천히 지나간 감정을 담아 흘러넘치지 않게 갈무리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