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Mar 04. 2024

메이 디셈버 단상

압구정. CGV. 메이 디셈버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열 길 물 속을 모르는데 한 길 사람 속이야 어떻게 알까(3.5)

메소드 연기가 가장 최고의 연기라는 인식이 있다. 조커를 연기한 잭 니콜슨, 히스 레저, 호아킨 피닉스 중 히스 레저의 조커를 최고라고 여기는 인식에서도 메소드 연기에 대한 경외심과 같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인식에는 히스 레저에 대한 특정 세대의 어떤 리즈적 인식, 조커를 연기하기 위한 히스 레저의 노력에 대한 일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히스 레저의 풍운아스러운 인생 등이 겹치고 겹치긴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히스 레저의 조커에 대해 조커라는 인물을 가장 잘 보여준 연기 혹은 조커 그 자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연기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주체의 관찰에 기반한 이상 메소드 연기라 해도 완벽하게 타인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그저 타인에 대한 주체의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출처. 키노라이츠

<메이 디셈버>는 메소드 연기가 대상에 대한 특정 배우의 관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레이시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시종일관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유지한다. 그에게 그레이시는 연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이해하기 어렵고 복잡한 인물이나 풀지 못할 인물은 아니다.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그레이시와 엘리자베스는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 1대 1로 스크린을 양분한다. 하지만 그레이시가 엘리자베스를 떠나 스크린에 엘리자베스만 남은 마지막 장면에서 엘리자베스는 풀샷으로 스크린의 정중앙에 있으메도 허공에 있는 듯, 외딴 섬에 표류한 듯 떠다닌다. 그레이시를 이해한다는 것이 사실은 자신이 보고 싶은대로 그레이시를 보고 있다는 것과 같음을 깨달은 엘리자베스의 모습은 배우의 연기에서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서 음계만 바뀔 뿐 멜로디는 동일한 OST가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그레이시를 분석해 인물화하려는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알기 위해 주변인들과 맺는 관계에서 엘리자베스의 행위를 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그레이시를 엘리자베스의 관점에서 보게 된다. 그런 가운데 OST는 관객에게 불안감을 자극하며 엘리자베스의 행보를 주시하도록 한다. 엘리자베스의 관점을 마냥 믿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어쩌면 그레이시와 조의 관계 혹은 사건에 대해 애초부터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그레이시에 대한 엘리자베스의 판단과 연결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감독이 원하는 대로 영화에 속은 듯한 기분이 든다. 불편한 듯 개운한 듯. 참 알기 어려운 감정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녀는 졸업하지 않는다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