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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Nov 19. 2021

기계의 세계에 저항하는 목적의 영웅들(2)

평촌 CGV. 이터널스.

하지만 기계의 세계와 목적의 세계 사이 충돌이라는 너무 큰 소재로 인해 인간에게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주제가 미처 소재를 전부 소화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냈다는 점이 <이터널스>의 단점이다. 이터널스는 기계의 세계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즉, 생명의 순환을 목적으로 대량 학살을 가져올 셀레스티얼 티아무트의 탄생에 저항하는 모습을 명확히 보인다. 문제는 셀레스티얼 티아무트의 탄생을 막으면서 다음 대 수천억의 생명이 지닌 가능성 역시 막았다는 것이다. <이터널스>에서는 가능성을 막은 것이라기 보다는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라고 밝히긴 한다. 하지만 이렇게 유보하는 것이 이후 진행될 페이즈4의 영화들을 통해서 천천히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보다 언제 곪아터질지 모를 상처를 급하게 봉합한 불안감으로 느껴진다.

이런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이터널스>의 인물 소진이라는 또 다른 단점 때문에 그렇다. 사실 이번 <이터널스>는 기존의 마블 유니버스의 영화들과 전개가 너무 다르다. 기존의 마블 유니버스 영화는 2008년부터 히어로 개인의 서사를 착실히 쌓은 후 2012년 <어벤져스>로 뭉치게 한 뒤 다양한 히어로가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서서히 합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타노스 사태를 막고, 죽으면서 은퇴한 아이언맨이나 자신의 삶을 선택해 늙으면서 은퇴한 캡틴 아메리카처럼 히어로 한 명 한 명이 의미없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서사에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면 하나 둘 퇴장하는 방식인 것이다. 문제는 <이터널스>는 시작부터 10명의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터널스>처럼 아직 시리즈의 인물들이 충분히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뭉친 뒤 그대로 정의를 닦으며 망해버린 영화를 알고 있다.


분명 <이터널스>는 마블 세계관에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동시에 마블 세계관은 엔드게임으로 마무리한 페이즈3을 끝으로 한 번 종료된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 뒤를 <스파이더맨:파프롬홈>, <블랙위도우>, <샹치:텐링즈의 전설>로 이어간다고 해도 페이즈4는 세계관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터널스>에는 마블 세계관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렇기에 인물 10인의 서사를 각각 구성하면서 그 10인의 서사가 서로 섞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터널스>는 정의닦이보다는 낫지만 그 와중에 10인의 분량을 제대로 나누지 못한다. 영화는 아리솀과 이터널스 사이 갈등만이 아니라 이카리스를 중심으로 아리솀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파와 세르시를 중심으로 인간을 수호해야 한다는 파 사이 갈등도 보여준다. 문제는 두 파의 갈등을 설명하기 위해 이카리스와 세르시 사이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너무 많은 분량할애했다는 것이다.

이카리스와 세르시 사이 로맨스는 두 인물의 유대감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이카리스와 세르시 사이 유대감은 이카리스와 세르시가 갈등하는 요인이기에 분명 서사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인물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기계의 세계와 맞서 싸우는 것은 나머지 8인이 함께해야 한다. 즉, <이터널스>는 10인의 히어로 모두를 제대로 보여주며 관객을 설득했어야 관객들에게 마블 유니버스 전체의 주제와 페이즈4의 방향성을 인식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이카리스와 세르시에게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하면서 뒤로 갈수록 이카리스나 세르시 중 한 명과 같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8인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총 10인의 인물 중 관객이 인물이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세르시, 이카리스, 스프라이트 정도다. 에이젝, 마카리-드루이그, 파스토스, 길가메시-테나, 킨고는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남아 관객의 취향에 맞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사실상 없는 인물이나 다름없어진다.

당연히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인물들은 액션에서도 조화롭지 못하다. 액션은 서사의 흐름을 탄탄하게 해주는 수단이지 그 자체로 주된 서사가 되지는 못한다. 즉, 마블 특유의 다양한 히어로의 다양한 능력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시너지를 내는 액션은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명확히 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준 다음에 가능하다. 하지만 <이터널스>는 이카리스와 세르시를 제외하면 다른 인물들은 능력만 보여줬을 뿐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서로 얼만큼 깊은 감정을 느끼며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관객에게는 보여주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그런 상황에서 토르의 번개로 충전된 아이언맨이 빔을 쏜다든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에 묠니르를 휘두르는 토르의 모습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정상으로 이미 오래 함께 했다고는 해도 오래 함께하는 과정에서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얼마나 깊게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능력이 조화를 이루는 액션은 구성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런 액션이 영화로 표현되는 순간 매력적이긴 해도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터널스>가 단순히 인물을 설명하지 못하기만 했다면 다행이지만 인물을 소진시켜 아예 서사 밖으로 날려버린 것도 문제다. 킨고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아리솀에 대적해 티아무트의 이머전스를 방해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면서도 다른 동료들과 싸우는 것도 싫어한 킨고는 이머전스의 순간에 다른 곳으로 도망가면서 최후의 전투에는 아예 사라진다. 아예 인물이 자기는 이 서사에서 있고 싶지 않다고 뛰쳐나가버리는 형상이다. 차라리 그것이 그 인물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면 모를까 <이터널스>는 서사 바깥의 제작자가 만든 영화다. 즉, 킨고에게 어떤 선택을 하도록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터널스>는 그러한 선택 자체를 포기했다. 여기에 최후의 전투가 끝나고 태양으로 날아가 자살을 택하는 이카리스 역시나 소진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아리솀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과 사랑하는 세르시를 배신했다는 것 사이 갈등과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아니 "굳이 자살까지 해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기계의 세계와 목적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 중 최전방에 서있다는 점에서 이카리스는 이후 진행될 서사에서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갈등 요소이자 주제를 강화할 수 있는 인물인데 너무 쉽게 소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러한 <이터널스>의 단점이 이후 진행될 페이즈4에 문제가 될 것이라 보는 것도 너무 지나친 관점이다. 어쨌든 <이터널스>는 기계의 세계와 목적의 세계가 충돌하는 가운데 빛을 발하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이라는, 마블 유니버스를 관통하는 주제를 한 차원 더 높게 설정했다. 즉, 주제를 더 큰 세계관에서 더 환상적으로 표현해보겠다는 포부와 이를 잘 해낼 수 있다는 점도 제대로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전체 서사에서 다양한 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지난 10년 간 마블에서 보여준 특기이다. 단순히 <이터널스> 한 번으로 무시하는 것은 10년의 마블을 지나치게 무시하는 태도 아닌가? 아직 페이즈4가 시작한 지 얼마되지도 않았다. 그저 이후 등장할 마블의 영화에서 마블이 자신들의 주제를 빛나게 하기 위해 어떤 기계의 세계에 목적의 영웅들이 어떻게 대항하는지, 그 끝에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은 어떻게 얼마나 빛날지를 즐기자. 욕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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