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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Jun 11. 2024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단상

용산. CGV.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이토록 서늘한 도파민에 어찌 반하지 않으랴(4.0)


이 영화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같은 선상의 도파민 영화로 기대하고 본다면 결단코 단호하게 일반적인 도파민 영화가 아니니 마음가짐을 달리 하라고 말하겠다. 이 영화의 도파민은 전작과 정반대에 있기에 시리즈라는 측면에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대단히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프리퀄이면서 시퀄이다. 모순이다. 이야기를 보고 듣는 시청자에게 과거, 현재, 미래 중 가장 흥미를 돋우는 시간대는 현재이다. 이야기를 보고 듣는 시청자는 이야기의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원인인 과거는 현재의 인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흥미롭지만 동시에 이미 지나간 시간일 뿐이다. 결과인 미래는 현재의 인물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보여주는 요소로 가장 궁금하지만 현재가 없다면 불가능한 하나의 점일 뿐이다. 즉,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선에서 실제로 역동하며 시청자에게 영향을 주며 흥미를 유발하는 시간은 현재이다.


그렇기에 시리즈 작품에서 프리퀄은 굉장히 흥미롭지만 동시에 시리즈 진행에서 효과적이지 않은 방식일 수 있다. 프리퀄은 시리즈를 기다리는 이들에게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라는 분명 흥미로운 의문점을 해결해주나 동시에 가장 궁금한 결과를 늦춘다. 게다가 작품 외적으로도 시청자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 작품 전체의 완성도에 비춰봤을 때 프리퀄은 과거라는 점에서 본편과 비교해 사건의 영향력 즉, 사건이 이야기를 보고 듣는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본편보다는 작아야 한다. 프리퀄 사건의 영향력이 본편 사건의 영향력보다 클 경우 이야기 전체의 흐름과 구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리퀄은 시퀄이기 때문에 다른 의미에서 현재이다. 그렇기에 이전 편보다는 사건의 영향력이 더 커야 시청자의 관심과 흥미를 높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프리퀄은 내외적으로 사건의 영향력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 강한 도파민을 원하는 최근의 풍조에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프리퀄이면서 시퀄이라는 이 모순된 지점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우선 전작과 비교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시퀄로서 액션에서 변화를 줬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황무지에서 모래 바람을 일으키는 대규모 로드 액션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전작에서 중요했던 것은 절망 밖에 없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그러한 의지를 가로막는 이들에 대한 분노였기에 대규모 로드 액션은 그러한 의지와 분노가 터져나오는 연출이라 할 것이다. 반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퓨리오사에게 있던 과거를 보여주면서 퓨리오사에게 집중하면서 로드 액션은 최소화한다. 대신 횡으로 구성됐던 대규모 로드 액션을 글라이더와 기중기 등을 활용해 종으로 확장하거나 좀비 떼에 맞서는 듯한 로드 액션, 즉 한정된 공간의 액션으로 변화를 준다. 하지만 실상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변화된 액션이 쉴 틈 없이 연결되듯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둔 상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시간 간격으로 관객은 액션을 보며 차오르는 도파민을 차갑게 식힐 수 있게 된다.

출처. 왓챠피디아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프리퀄로서 퓨리오사라는 인물에게 집중한다. 제목에서부터 사가(Saga)라는 이름을 통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와 연결된 하나의 서사라는 점을 부각하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황무지의 기원, 퓨리오사가 돌아가려 했던 '녹색의 땅'의 모습, 퓨리오사와 디멘투스 혹은 퓨리오사와 임모탄 조 사이 전사 등을 통해 전작에서 퓨리오사가 어떤 감정과 동기에서 그러한 행동을 취했는지에 집중한다. 이중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퓨리오사와 디멘투스의 관계이다. 디멘투스의 대사에서 볼 때 두 인물은 굉장히 비슷한 전사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종말 속에서 두 사람은 굉장히 비합리적인 이유로 소중한 이를 잃었으며 잃는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경험해야 했고 이 세계에 더 이상 희망이란 없다는 것을 체화한 인물이다. 이러한 체화의 과정에서 퓨리오사는 디멘투스와 다르게 어떻게든 어떤 희망을 찾으려는 인물이다. 즉,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퓨리오사의 복수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 것을 그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굉장히 의도적으로 액션 사이에 간격을 둔 것 같다. 본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는 과정을 그린 퓨리오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복수는 달성돼야 하지만 동시에 목표여서는 안 된다. 관객은 퓨리오사의 복수를 따라가면서 그가 어떻게 복수를 달성하는지 봐야 하지만 복수의 과정에 흥미를 느껴서는 안 된다. 매드맥스 사가라는 전체 이야기 중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시작일 뿐이다. 인물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천천히 느끼게 되는 차가운 도파민이 있어야 액션에 의한 뜨거운 도파민이 더욱 커다란 쾌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기에 전작보다 이번 프리퀄은 액션이 끊임없이 이어져서는 안 되며 퓨리오사라는 인물의 변화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면서 전작을 떠오르게 해 프리퀄이면서 시퀄인 자신의 모순된 위치에서 시퀄은 지우고 프리퀄이라는 지점만 남겨야 했다. 즉,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계속해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떠오르게 한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가장 커다란 로드 액션과 전쟁 액션을 함께 보여줄 있었을 40일의 전쟁 장면을 환영과 같은 장면과 편집으로 넘어간 것을 기억하자. 밤중 임모탄 조의 하렘에서 여자들을 미리 다음날 운행할 차량으로 인도하는 퓨리오사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라는 점과 그런 와중에 퓨리오사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보여주고 있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자. 영화 크레딧에서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아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기억하자.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어 앞서 나아가고 있고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이야기의 시작으로서 흘러간 이야기로서 앞서간 이야기를 기억하게 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매드맥스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라는 감독의 전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전언이 느껴지는 이 프리퀄이 전편보다 뜨겁지 않은 도파민을 준다고 해서 더 뜨겁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계속 나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서늘한 도파민은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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