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etto Jun 12. 2024

프렌치 수프 단상

코엑스. 메가박스. 프렌치 수프.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일생의 일상을 채운 따뜻한 수프를 다시 만날 수 있으랴(4.5)

일상의 동반자를 향한 사랑을 음식과 요리로 그렸다는 것이 놀랍다. 원작의 제목인 <도댕 부팡의 열정>이 <프렌치 수프>로 바뀐 것에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프렌치 수프라는, 특히 수프라는 제목이 이렇게 낭만적일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도댕과 외제니 두 사람의 만찬 준비로 시작되는 영화는 요리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재료의 손질부터 요리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영화의 흐름은 실제 만찬에 참여한다는 기분에 더해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기분이 들게 한다. 시각을 기반으로 청각이 더해진 식사를 하다보면 영화 속 음식들이 어떤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는 점에서 영화에게 식폭행을 당한다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황홀하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러한 기분은 도댕과 외제니가 음식과 요리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흥미로 이어지고 그럼에도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에 식폭행을 당할 때 보다 더욱 황홀해진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만찬이나 왕자의 만찬에서 음식을 이성과 합리로 분석하며 먹는 도댕은 음식에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항상 더 조화롭고 완벽한 맛을 탐구하는 그는 언제든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 밭을 돌봐 재료를 수확하고 그 재료를 요리하며 음식의 맛을 상상해 그 맛을 구현하는 외제니는 따뜻한 열정을 갖고 있다. 도댕과 다르게 그는 요리한다는 행위와 누군가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는 게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 사랑할 수 있다. 다른 이의 열정으로 더 따뜻한 요리하게 되고 다른 이의 따뜻함에 너무 뜨거운 열정을 온화하게 만들 수 있다. 두 사람 각자가 좋아하는 계절이 재밌게도 마치 서로를 형상화한 듯 도댕은 겨울을, 외제니는 여름을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출처. 왓챠피디아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은 2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도댕의 말처럼 매 세 끼를 함께 만들고 고민한 두 사람에게 사랑은 음식과 요리만큼이나 일상이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스프와 같다. 언제나 따뜻하게 입맛을 돋궈주거나 배를 온화하게 채워주는 스프는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지나치게 소박하지도 않다. 겉모습이 변할지라도 본질은 여전히 언제나 전체를 위한 한결같은 시작이다. 도댕이 왕자에게 대접할 만찬의 메인으로 포토뵈를 준비하려 한 것과 그런 도댕에게 외제니가 당신답다며 함께 포토뵈를 준비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출처. 왓챠피디아

"당신의 아내인가요, 아님 요리사인가요?" 도댕은 고민하다 말한다. "요리사예요." 어쩌면 자신의 포토뵈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를 새로운 요리사를 만나러 가는 도댕의 뒤로 외제니와 도댕의 기억이 주방에서 펼쳐진다. 두 사람이 결혼했을 때인지 결혼하기 전 어떤 날인지 알 수 없다.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도댕이 사랑한 동반자는 외제니가 유일할 것이라는 사실. 두 사람의 기억이 떠도는 주방에서 도댕은 계속 자신의 요리사를 기억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