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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Feb 20. 2022

두 갈래 길에서 갈팡질팡하는 환향의 길

2022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금의환향.

성공한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은 성공한 사람에게서 떡고물을 탐하는 인간 세태를 비판하는 이야기로 혹은 과거에서 벗어나 충실히 현재를 살자는 이야기로 연결된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금의환향에서 말하는 성공은 타지에서 물질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보다 복잡하고 깊이를 더해 생각해보면 금의환향의 성공은 고향에서 마음이 떠나있던 누군가가 성공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금의환향은 물리적으로 육체가 떠나있든, 정신적으로 마음이 떠나있든 고향 혹은 그와 비슷한 어딘가를 떠나있던 누군가 물질적 성공 혹은 정신적 깨달음을 얻은 뒤 돌아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중 전자의 성공에는 떡고물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떡고물을 두고 아귀다툼이 발생한다. 반면 후자의 성공은 떡고물이 떨어질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고뇌하던 문제를 해결한 상태에서 현실을 충실히 살 수 있게 된다. 이렇듯 금의환향에서 할 수 있는 2개의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로 각각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하나의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가 아닌 2개 이상의 주제를 담다 보면 길을 잃기 마련이다.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와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로 2개의 서사 라인으로 진행되는 연극 <금의환향>은 위에서 언급한 과거에서 벗어나 충실히 현재를 살자와 성공한 사람의 떡고물을 탐하는 인간 세태에 대한 비판이라는 두 주제가 함께 진행된다. 하지만 이 두 주제가 어떤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진행되고 따로 끝난다는 점에서 <금의환향>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의환향>이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장면 전환이 어색하다는 것과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가 애매하다는 것으로 크게 2가지라 할 수 있다. 우선 전자의 경우,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와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개의 서사 라인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금의환향>은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와 관련된 장면이 끝이나면 암전을 활용해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로 넘어간다. 이 때 관객은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에서 우창과 황가 두 노인의 우정에 울고 웃으며 감정을 이입하는데 암전으로 인해 이입하고 있던 감정을 미처 소화하기 전에 암전으로 인해 새로운 장면을 맞이하게 된다. 감정이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아가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가 끝나고 암전 다음 등장하는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는 인간 세태에 대한 비판 주제를 담고 있다. 한국인임을 숨겼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제임스 리가 자신이 이동구라는 한국인임을 밝히고 절필 선언과 동시에 고향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발표를 하면서 제임스 리의 고향이 어디인지, 고향이라면 그 고향을 어떻게 관광지화 할 것인지, 제임스 리라는 인물을 어떻게 이용해 한국의 이득이 되게 할 것인지 등을 논하는 정부, 언론, 민간 등의 모습이 무대에 등장하는 것이다.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에서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면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에서는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소와 쓴웃음이 담긴 비판의 시선으로 무대를 보게 된다. 즉,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서사와 감정을 이입할 수 없는 서사가 암전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고 두 서사가 담고 있는 주제가 전혀 다르다 보니 전반적인 극의 서사가 갈팡질팡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일부 장면에서는 배우의 연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암전이 시작되어 이것이 실수인지 아니면 의도인지, 의도라면 대체 무엇을 의도하는 것인지 등 극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면서 서사가 더욱 어지럽게 느껴진다.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가 애매하다는 점은 현실에 충실한 삶과 인간 세태 비판이라는 2개의 주제 중 인간 세태 비판은 2개의 서사 라인 모두에서 제시되는 반면 현실에 충실한 삶은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에서만 제시된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인간 세태 비판 주제는 제임스 리의 귀국 서사에서 제임스 리의 성공을 이용하려는 정부, 언론, 민간 등의 모습을 드러내는 뉴스 보도와 경찰청장의 전화에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우창-황가의 마을 서사에서 인간 세태 비판은 면장, 경찰 서장, 학교 교장 등 마을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부류의 행동으로도 드러난다. 마을의 지도층이라고 하는 부류는 평소에는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은 우창이 제임스 리의 친구라고 하자 우창의 생활을 신경쓰면서 태도가 돌변한다. 나아가 제임스 리의 생가가 어디인지, 생가를 알 수 없다면 대충 아무 집이나 꾸민 다음 이 집이 제임스 리의 생가라고 우창이 말해주길 바라는 등 어떻게든 마을의 발전을 도모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지도층은 각자 자신의 위신과 이익을 챙기려고 해 서로 말싸움을 넘어 몸싸움까지 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문제는 현재에 충실한 삶이라는 주제와 인간 세태 비판이라는 주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두 주제를 구체화하는 연기가 서로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현재에 충실한 삶이라는 주제는 돌아오지 않을 동구와 가족에게 마음이 향해 있는 우창이 친우 동구와 동성동명인 제임스 리가 자신을 보러온다고 하는 것에서 호기심만이 아니라 누군가 자신을 그리워한다는 것 자체에서 어떤 기대감과 기쁨을 느끼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삶을 다잡는 것으로 나타난다. <금의환향>은 이러한 우창의 변화를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창과 황가 두 노인의 우정을 마치 오래도록 함께 한 늙은 노부부가 티격대격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소소한 귀여움으로 드러내 우창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두 노인의 우정이 소소하고 아기자기하게 귀여우면 귀여울수록 관객은 왜 우창이 반세기 동안 보지 못한 동구를 그리워하는지 이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렇게 이해할 준비를 마친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산불로 가족을 잃으면서 삶의 의미까지 잃은 우창에게 동구라는 인물은 황가 노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자신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즉, 우창과 황가의 우정은 관객의 감정 이입을 위해 감정과 갈등 양상이 소소하고 아기자기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인간 세태 비판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인물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과정에서 인물의 감정 크기는 크고 인물 간 갈등 양상은 뚜렷하게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면장, 경찰 서장, 학교 교장 등 마을 지도층은 어떻게든 자신들의 마을하면 제임스 리가 떠오를 수 있도록 자신들의 마을과 제임스 리 사이 관계성을 높이려고 한다. 관계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땅값이 오르건, 마을 예산이 늘어나건 자신들의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말싸움과 몸싸움처럼 2인 이상의 인물이 뚜렷하게 충돌하는 갈등 양상이 명확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갈등 양상이 명확하다는 것은 그에 맞춰 인물의 감정 역시 뚜렷하고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에 충실한 삶이라는 주제가 우창과 황가 두 노인의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우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감정과 갈등 양상이 소소하고 아기자기한 것과 달리 인간 세태 비판이라는 주제는 2인 이상의 인물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충돌하면서 감정과 갈등 향상이 크고 뚜렷하다. 주제 구체화를 위한 연기의 감정과 갈등 양상의 폭과 깊이 차가 커 <금의환향>의 서사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금의환향>은 제임스 리의 절필 선언은 곧 스스로가 더 이상 작품 활동을 못할 정도로 늙어 이제 곧 죽는다는 의미였으며 그의 귀국 역시 제임스 리의 사후에 진행된 것이자 그의 마지막 작품 활동이라는 것과 이미 친우 동구의 죽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우창이 황가 노인과 우정을 다잡으며 삶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고 죽어서 온 제임스 리의 관에 명복을 비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결말에서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금의환향>이라는 극의 주제가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전자를 강조한다면 성공한 사람의 떡고물을 탐하는 인간 세태를 비판하는 주제가, 후자를 강조한다면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자는 주제가 강조될 것이다. 하지만 이미 <금의환향>의 서사는 진행 과정에서부터 둘로 나뉘어진 주제를 다르게 진행하면서 관객에게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결말에서 둘 중 어느 하나를 강조한다고 해도 갈팡질팡하던 환향길이 하나로 합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주제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하고 서사를 진행했다면 극 자체가 말 그대로 금의환향하며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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