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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Feb 23. 2022

만담(漫談)과 만담(曼談) 사이

2022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여우만담.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공연을 볼 때 지루해지는 순간이 있다. 보통 관람하고 있는 공연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을 때이다. 공연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공연의 내용과 형식 모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즉, 어떻게 즐겨야 할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주제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주제와 인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주제와 관련해서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3가지 순간에서 공연을 지루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공연의 패턴에 익숙한 경우이거나 공연 자체가 취향에 안 맞는 경우 등과는 다르다. 관객과 무대 사이 반응의 상호작용이 연속할 때 관객은 공연이 전하고자 하는 바 즉, 공연의 주제를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하며 이해하게 된다. 공연이 전달하는 말의 의미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은 애초에 관객이 공연과 어떠한 반응의 상호작용도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라 꺼낼 수도 없는 휴대폰이 들어간 주머니를 만지작 만지작 하는데 공연은 계속해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전달하니 관객 입장에서는 상호작용 없는 공연만큼 최악의 공연이 없을 것이다.


 <여우만담>. 아니 정확하게는 <여배우만담>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 당대 여배우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안내 책자에는 적혀 있다. 문제는 연극에서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느껴지지도 않으며 대체 왜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려고 하는지 즉, 여배우의 삶을 조명하는 것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 가장 명확한 것은 연극의 시대 배경이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직후 즉,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즈음이라는 형식 뿐이다. 무대를 채우는 의상, 소품, 음악은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의 한국을 잘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여우만담>은 일제강점기의 동방극단이라는 극단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편집없이 그냥 찍고 있는 카메라 같은 시선으로 서사를 전개한다. 편집없이 그냥 찍고 있는 카메라라고 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 즉, 주제가 있다. 하지만 <여우만담>은 그저 찍고 있는 카메라 같은 시선으로 일제강점기의 어느 한 극단을 재현만 할 뿐 재현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관객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지루한 공연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데에는 주제와 인물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과 주제와 관련해서 장면이 불필요하다고 느껴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을 듯하다.

극단에 들어오기 위해 부모님의 돈을 훔쳐 상경한 전민‧전혜숙 남매가 경성역에 도착한 것에서 시작하는 연극은 남매가 무대에 서고자 하는 열정 즉,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멋지게 보이고 싶어하는 열정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왜? <여우만담>에서 등장하는 기생이자 여배우 월희는 연기를 잘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대에서 빛나고 예쁘게 나오는 것을 목적으로 갖고 있는 것으로 재현된다. 왜? <여우만담>은신여성이라 불리는 조선의 여성들을 타락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하기 때문에 억압해야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당대 조선 남성들의 가부장제 남성의 시선을 재현한다. 왜? <여우만담>은 전민‧전혜숙 남매만이 아니라 석정란, 월희, 여장남성 여환 등 동방극단의 배우들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제대로 된 공연을 하지 못해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왜? <여우만담>의 전체 서사에서 전민‧전혜숙 남매는 분명 중요해 보이지만 다른 인물들과 비교해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남매는 항상 장면에서 함께 등장한 것에 비해 연극은 극의 초반 잠깐 등장한 라무네와 과자를 팔던 소년이 사실은 소녀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혜숙과 라무네 소녀가 함께 만담 <엉터리 세계일주>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왜?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인물과 사건만이 아니라 <여우만담>의 서사를 구성하는 인물과 사건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구체화하지 못한다. 당대 여배우의 삶을 조명한다고 했지만 여성이면서 배우인 존재인 삶에서 어느 쪽을 부각한 것인지가 애매한 것이다. 배우임에도 여성이라 차별과 혐오를 받았으며 차별과 혐오에도 이겨내 모든 것이 파괴된 전쟁 중 혹은 전쟁 직후의 상황에서도 배우로서 의미를 잊지 않은 여배우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여우만담>의 목표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당대 여성이 받은 차별과 혐오는 부각되었지만 부각된 지점이 배우라는 지점과 연결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극 전반에서 여성은 한 남성을 위해 순수한 사랑과 헌신을 바쳐야 한다는 가부장제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차별과 혐오를 받는다. 이와 같은 사랑과 헌신을 바치는 역할이 주로 여배우에게 주어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문제적으로 그리고 있는지, 문제적이라면 왜 문제적인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당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부각되는 것에 비해 배우의 삶을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극단은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연극을 다수 올리기도 하며 여장남성을 배우로 기용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혜숙이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극도의 차별과 혐오를 받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성 층위가 서사에서 부각되는 동안 배우 층위는 서사에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는 것이다.


<여우만담>의 장면들 역시도 주제와 관련해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여우만담>은 식민지 조선의 정치 상황과 그 시기에 인기를 구가했던 연극, 노래, 만담, 영화 등을 직접 재현한다. 문제는 이러한 재현이 <여우만담>에서는 정말 재현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대사나 노래까지 길어 어떤 재현은 극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관객이 보고 싶은 바를 볼 수 있는 것이 공연이라고 하지만 공연에서 주제에 맞춰 장면이 집약되어 있을 때 일이다. 앞서 언급했듯 여성만 부각하고 배우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어지며 배우가 존재하지 않는 <여우만담>은 왜 굳이 저 시대를 공연계를 통해 보여주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연극이 된다. 시청각적인 측면에서 의상, 소품, 음악은 분명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사이 경성의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장면의 연속으로 느껴지니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을 밀도 있게 다루는 다큐멘터리나 영화와 비교해 <여우만담>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여배우라는 외관의 이면에 존재하는 밀정, 소녀, 기생 등 수많은 층위와 그 층위에 부과되는 차별과 혐오들이 나열될 뿐 굳이 여배우라는 층위와 연결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으니 더욱 난해할 뿐이다.


1시간 공연이 길게 느껴질 수도 있고 2시간 공연이 짧게 느껴질 수 있다. 무대의 시청각 요소, 배우의 목소리와 연기 등에 상호작용할 때 관객은 연극을 자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다른 누군가와 의견을 나눈다. 어떤 극이든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해 관객과 최대한 분명히 상호작용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 관객은 극에 깊이 자신을 맡길 수 있다. 재미있고 익살스러운 말솜씨 혹은 대화로 세태(世態)와 인정(人情)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만담(漫談)은 기본적으로 말솜씨 혹은 대화로 관객을 홀리기 때문에 말 사이 쫀쫀한 긴장이 중요하다. 동시에 긴장을 타고 관객에게 비판하고 풍자하는 대상과 그 이유가 명확하게 전달되어야 한다. 긴장이라는 분위기와 말솜씨 혹은 대화라는 형식이 비판‧풍자의 대상과 그 이유라는 주제와 합치되어 관객과 상호작용할 때 만담은 익살과 해학을 품고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그에 만담이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여우만담>은 명확하지 않은 주제가 익살과 해학을 타지 못한 채 무대 위만 맴도는, 늘어지는 대화(曼談)가 되었을 뿐이다. 일반적인 만담의 형식과는 거리가 먼 연극이니 제목은 제목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것일까? <여우만담>이 관객에게 청한 대화는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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