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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Feb 26. 2022

봄비 내리는 날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2022 대한민국연극제 서울대회. 봄비 온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비는 인간의 감정과 재밌는 관계를 맺는다. 단순히 '물'과 '하강'이라는 이미지로 인해 슬픔,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만이 아니라 행복, 분노, 즐거움 등 다양한 형태의 감정과 비는 관계를 맺는다. 하늘에서 '물'이 '떨어지는' 그 모습이 보는 이의 감정을 다양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의 특성은 사랑과 관계와도 연결된다. 사랑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희노애락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가수 버블시스터즈의 <하늘에서 남자가 비처럼 내려와>나 김태우의 <사랑비>만 봐도 비가 떨어지는 이미지와 연결되어 사랑은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 축복처럼 떨어진다는 이미지를 갖게 된다. 반대로 부활의 <비와 당신의 이야기>, 에픽하이의 <우산>을 보면 헤어지는 순간에 비는 세상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는 헤어진 이의 마음에 공감하며 위로해주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즉, 다양한 감정의 복합체인 사랑과 다면적인 관계를 맺는 비는 그 모습과 시기에 따라 사랑을 한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봄비 온다>의 두 남녀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며 매 순간 만나는 비에서 서로 사랑했던 과거와 더불어 상대방을 그리워하게 되는 이유이다.

<봄비 온다>는 자신의 미래에 자신감이 없는 남자와 남자와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은 여자의 사랑을 대학생 무렵부터 인생의 노년까지 그리고 있다. 사랑을 다루는 여느 이야기와 비슷해 보이지만 중년의 남녀 배우가 대학생 무렵부터 노년 때까지를 전부 연기하면서 <봄비 온다>는 여느 이야기보다 더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사랑이 비와 연결되는 순간 한층 깊어진 사랑의 감정이 비에 맞춰져 전달된다. 나아가 <봄비 온다>는 서사를 사랑이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사계절에 맞춘다.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던 와중에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는 대학생 시절은 생명의 탄생을 예감하는 봄. 이혼한 이후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 상대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 등이 뒤섞인 이혼 이후 중년 시절은 매일 내리는 비에 집에서 오래 생각하게 되는 장마철의 여름. 막 이혼하여 상대에 대한 미안함과 배신감, 여전히 남아 있는 애틋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명확히 모르겠는 이혼 직후 시절은 갑자기 비가 내리는 가을. 서로를 향한 사랑은 여전하지만 몸이 멀어지면서 채워지지 못해 커져가는 마음에 서로를 그리워하는 이름 모를 시절은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느라 몸을 웅크린 겨울. 두 남녀의 사랑이 겪는 변화를 계절을 통해 느끼고 결과를 비로 느끼면서 관객은 쉽게 두 남녀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비와 계절로 형상화되는 두 남녀의 사랑은 사랑 자체는 변해도 인물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남자는 등장부터 끝까지 자신의 인생과 여자를 향한 사랑에 자신감이 없다. 인생에 확신이 없으며 그에 따라 계속해서 일정 정도 여자와 거리를 둔다. 1m의 간격을 계속해서 줄여나간다고 해도 결국 1cm의 간격은 남겨둘 것이라고 남자를 평한 여자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변하며 내리는 비가 매번 바꼈음에도 남자는 여전히 여자에게 거리를 둔다. 반면 여자는 남자를 끝까지 바라보며 사랑한다. 물론 여자가 대학생 때 바란 것처럼 평생을 어느 곳이든 남자와 함께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남자가 자신의 마음을 배신하고 정신적인 불륜을 저질렀을 때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심지어 남자가 죽은 이후에도 여자는 남자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시종일관 여자를 밀어내는 남자와 남자에게 계속해서 여지를 주고 다가가려는 여자. 약 70분 정도 되는 시간동안 사랑의 흐름이 계절과 비에 따라 격하게 변화하는 와중에도 변화하지 않는 남녀의 구도는 극을 지루하게 만든다. 세상을 떠난 남자의 기일을 챙기는 와중에 내리는 봄비를 보며 남자를 떠올리는 여자의 모습은 사랑의 아름다움을 전달해주면서도 어떤 지점에서 남자를 저렇게 사랑할 수 있을지 이해하기 어렵기만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랑했던 사람은 단순히 "했던"이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헤어짐은 관계의 끝일 뿐 남겨진 흔적의 메움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비가 오면 떠오를 뿐이다. 언제나 부정적이지도 않고 항상 긍정적이지도 않다. 물론 남자에게도 무언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더라면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사랑의 아름다움을 깊이 담고 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떠나간 이들이 남긴 흔적에 잠시 아려지기도 하고, 찜찜해지기도 하며, 괜히 센치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랑이다. 미래에 불안해 하는 와중에도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녹이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준비하는 봄비를 보며 함께 "봄비 온다!"를 외치며 미래를 향한 새로운 시작을 받아들인 남자는 이미 여자에게 봄비라는 흔적을 남긴 인물일 것이다. 여자에게 봄비라면 남자에게도 여자를 떠올리는 무언가 있었을 것이다. 봄비 내리는 날 남자를 그리워한 여자처럼 당신은 무엇을 보면 누구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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