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집엄마 Apr 12. 2021

지나간 과거에 대한 매너

과거의 그때 '때문에' 말고 '덕분에'

1980년대 흥행했던 영화 [백 투 더 퓨쳐(Back to the future)]

남자 주인공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박사님이 발명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부모님의 젊은 시절을 만나고 꼬여버린 일들 풀어나가게 되는 줄거리의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인기가 많아져 시리즈로 몇 편 더 나왔는데 그중 미래로 가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릴 때 동생과 신기함과 흥미로움으로 빠져들며 봤던 기억이 나는데 딱히 돌아갈 과거가 없던 어린 시절 그저 재미와 신비로움으로만 접했던 이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가끔 생각이 날 때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타임머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다.

'타임머신'에 대해 정신세계(?)가 비슷한 친구와는 한때 '먼저 타임머신을 발견한 사람은 꼭 말해주기'라는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하기도 하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과거로 돌아가 아쉬운 일들을 다시 고치거나 만들고 싶어 했다.

이렇게 나뿐만이 아니라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은 많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질 만큼 사람들에게 '관심'과 이룰 수 없어서 더 간절한 소원이나 희망 같은 것이다.


나 또한 한때는 과거에 얽매여, 과거에 발목이 잡혀, '현재'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공부 좀 더 열심히 해볼걸..', '그때 그 말을 하지 말걸..', '거기에 가지 않았다면..' 등등..

누구나 생각했고 상상하는 그런 시답잖은 많은 일들의 과거를 후회하며 속을 쓰라려하고는 했다.

특히 제일 컸던 기억은 남편과의 싸움으로 인해 '결혼하기 전'의 생각에 잡혀있었던 적이다.

연애가 짧았던 우리는 결혼 뒤 '매일'이라고 해도 무색할 만큼 정말 '쌈닭'처럼 싸웠다.

그때마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해서 남편에게 상처를 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혼자 붙잡고 돌아가고 싶다며 이룰 수 없는 소원을 빌면서 흐느껴 울고는 했다.

과거에 갇혀버린 그 순간에는 '과거의 나'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나 꼬물대고 있지만 기본적인 돌봄으로만 살아갈 뿐 내 머릿속은 온통 '결혼 전'으로 가득 차있었고 당시 친정부모님이 옆에 안 계셨다면 내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해 아이들은 더 깊은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결혼한 지 13년째인 지금.

그때처럼 나는 불행할까?

지금의 난 여전히 과거의 나에게 멈춰서 현실을 회피하고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 아니다.

그 수많은 싸움과 더 뒤로 가 결혼 전 나의 과거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남편을 만나기 전에 경험했던 사람과의 관계들, 사회인으로 살아가며 배웠던 일들, 가족과의 희로애락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 아니었을까.

최하점이 있어야 최상 점도 있는 것이고 최상점까지 올라가는 과정 중 그 중간의 점들도 있어야지만 인생의 굴곡선이 완성된다.

남편과의 처절하고도 치열한 싸움이 없었다면, 어떤 말에 상처를 받고 어떤 행동이 서운했는지 몰랐다면 지금까지 서로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른 채 살아가며 헐뜯고 있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관계 속 갈등, 내가 했던 선택들의 후회나 만족의 경험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걸음마하는 아기처럼 아무렇지 않게 흙탕물 웅덩이에 발을 넣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의 그런 경험과 시간들이 지금은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 과거에 머물러있다.

그 모든 과거가 하나씩 하나씩 몇 천 피스의 퍼즐 조각들이 되어서 지금 제 자리로 맞춰지고 있는 중이고 지금 이 순간도 과거로 자리 잡아 퍼즐의 한 조각이 될 예정이다.

후회할 일이 없었다면 우린 언젠가는 후회할 일을 선택하게 될 텐데 타이밍이 맞지 않는다면 뒤늦게 거기에 대한 결과가 더 나쁘게 흘러갈 수도 있을 일이다.


과거에 맛봤던 후회와 좌절이 몸에 좋은 약이라고 생각하자.

'몸에 좋은 약은 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의 쓴 약을 몇 번씩이나 먹었지만 결국 더 큰 정신건강과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영양제였던 거다.

쓰디쓴 그 과거를 절대 잊을 수는 없지만 그 쓴 맛을 자꾸 기억해내지 말고 그때 좋은 거 먹고 지금의 내가 이렇게 건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자.

아직 나는 살아갈 날이 너무 많이 남았고 지켜야 할 가족들도 있으니 내 삶이 건강해야 한다.

그게 과거라는 몸에 좋은 약의 효능이고 그 약을 힘들게 만들어 낸 나의 과거에 대한 매너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이렇게 행복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책 읽기 싫은데 읽고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