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약이 아닌가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인연들 속에
예기치 못한 잘못된 만남은
한순간에 나를
그때
그 시간으로
사정없이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몇 주 전
혼자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 길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한 마디의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단번에 알았다.
그 사람이다.
긴 시간 동안 날 너무 힘들게 했던 그 사람.
분명 몇 년이 흘렀건만
그 순간 나는 그때의 그 시간과 상황들 속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순간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내 뒷모습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올까 두려웠다.
뛰어가면 눈에 더 띌까 싶어 점점 속도를 내서 빠르게 걸었다.
하필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방향이라 더 서둘러야 했다.
집에 도착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화가 났다.
'여전히 멍청이구나.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한심했다.
그때의 나는 그 사람의 만행을 힘없이 받아내며 '헤헤' 거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서 잊은 줄 알았던 그 바보 같던 날들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이 단단해진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의연해진 줄 알았는데
나이만 먹고
내 마음의 상처에 대한 대처는
박스 떼기로 만든 어설픈 방패만 서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