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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Oct 19. 2021

십공주와 반팅

아, 유치 찬란했던 나의 고딩 시절아

 중학교 때는 규정상 귀밑 5 센티미터라는 머리카락 길이에 제한이 있어 항상 단발만 가능했고, 반곱슬에 엄마를 닮아 머리숱이 유독 풍성했던 나는, 머리카락이 구불한 커다란 삼각 김밥 모양이었다. 아침에 거울을 볼 때마다 내 얼굴 크기의 족히 두배는 될 거 같은 붕 뜬 머리카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등을 째려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들어가기 전 겨울 방학, 반드시 이 머리를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모은 돈을 가지고 동네 미용실을 뛰어가 문을 박차며 말했다.

 "아주머니, 쫘악 펴주세요!"

 그렇게 나는 삼각 김밥과 절대 다시 만나지 말자라고 손사래 치며 안녕했고 쭉쭉 뻗은 일자 앞머리와 머리카락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같은 반이 되었던 중학교 동창이 나를 못 알아볼 정도였다. 그리고 교복을 몸에 딱 맞게 마이(재킷이라고 하지 않았다.)부터 조끼, 치마까지 수선을 했고 당시 핫했던 가방과 신발도 새로 사서 나름 화려한 고등학생으로 데뷔했다.


  

 본격적으로 내가 모범생 티를 벗고 작정하고 놀기 시작한 것은 2학년 때부터였다. 2학년 1반으로 배정을 받은 3월의 첫날은 여전히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어, 규정상 금지되었지만 교문에서 학생 주임에게 걸려도 바로 그 자리에서 벗어 버릴 수 있는 빨간 맨투맨 티를 겹쳐서 입었다. 어느 학칙에 있는 건지 아무도 알지 못한 머리카락의 규정은, 학년 별로 귀 밑으로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는 길이가 달랐는데 1학년은 5센티미터이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10센티미터, 15 센티미터로 기를 수 있었다. 제법 머리가 길었던 나는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삼 대 칠쯤으로 가른 뒤 깻잎 머리를 했다. 이 날을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기억을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도 친한 친구가 2학년 때의 짝꿍이었고, 이 친구가 항상 다른 친구들에게 고등학교 이야기가 나오면 나의 첫인상에 대해서 종종 말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자리에 앉았는 데 왠지 껌 좀 씹었을 거 같고 빨간 맨투맨티를 입은 깻잎 머리를 한 날라리가 짝꿍인 거야. 그래서 속으로 별로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는 데 선생님이 임시 실장을 뽑는다면서 성적 우수자를 호명할 때, 갑자기 얘가 일어나는 거 있지. 진짜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랬다.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고 허영심이 가득했으므로 공부는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년이 바뀌어 올라갈 때마다 이렇게 이름이 불리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함께 들어야 했다.

 분단의 중간보다 뒤 쪽에 자리를 앉아서 짝꿍을 필두로 앞뒤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해 이내 무리는 열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옆 반인 2반에서 십이간지라는 열두명의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우리도 은근슬쩍 모임명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여 '십공주'라고 칭하게 되었다.

 십공주의 순서는 아주 간단하게 생년월일로 정했는 데 나는 오공주로 딱 중간 정도였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유치하면서 진지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똘똘 뭉쳐서 다녔고 그 와중에 몇 명은 옆의 남고에 소문이 날 정도로 예쁜 미모를 가진 친구들이 있어서 2학년 1반의 십공주가 슬슬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고에 남자 친구를 두었던 칠공주가 반팅이라는 것을 제안했다. 이곳은 여고였고 평소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대놓고 마련된 기회는 없어서 모두의 기대 아래 반팅은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다. 최종적으로 남녀 합해서 서른 명 정도가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린 후 모였는데, 여고를 다니면서 이렇게 남자아이들을 대량으로 만난 적은 처음이었다. 가게는 우리가 전세를 냈기에 사장님은 몰래 소주와 맥주를 제공했다. 고삐가 풀린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주와 맥주를 말며 모두에게 술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을 제안했다. 그때 유행했던 이미지 게임이라는 것을 하자고 했다. 예를 들면, "우리 중에서 가장 자기 방이 더러울 것 같은 사람은?" 같은 질문을 던져서 다수에게 지목을 당한 사람이 걸리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묘미는 질문의 내용에 따라서 본인이 호감이 가는 사람을 은근히 나타낼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이성 친구를 많이 사귀어봤을 거 같은 사람은?"

 반에서 꼭 한두 명은 있는 분위기를 주도하는 메이커가 질문을 던졌다. 모두들 젓가락을 들고 서로의 눈치를 좌우로 보다가 메이커의 하나아두울셋하는 소리에 본인이 생각한 대상을 향해 젓가락으로 찔렀다. 가장 많은 젓가락을 받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번도 남자 친구를 사귀어본 적이 없는 나였다. 나는 매우 억울해하면서도 내가 인기가 많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네라고 좋을 대로 해석하면서 메이커가 만들어서 내 앞에 놓아주는 소맥잔을 바라보았다. 중학교 캠핑을 갔을 때 일진에게 받아 마시고는 세상에서 이렇게 맛없고 쓰디쓴 것을 어른들은 왜 돈까지 주고 사서 먹는지 모르겠다며 뱉은 그 술이다. 나는 아직 회오리가 돌고 있는 소맥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옆에서 연신 박수를 치고 마셔라 마셔라를 외쳐대는 아이들 틈에서 난처해했다. 그 순간 갑자기 커다랗고 핏줄이 튀어나온 시커먼 손 하나가 쑤욱 나오더니 내 잔을 채어갔다. 조금 전부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있던 내 앞의 남자애가 채어간 잔을 자기 입에 한 번에 털어놓고 있다. 바닥이 보이는 유리잔을 나무 테이블에 내려놓고 스스로 뿌듯함을 숨길 수가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눈을 찡긋한다. 오오오오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남자애에게 흑기사를 했으니 나에게 소원을 하나 요구할 수 있다고 아이들이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가,

 "내 소원은..."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 때 내 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엄마!"

  나는 소원을 말하려는 그 남자아이를 뒤로 하고 엄마의 전화를 받기 위해 시끄러운 가게를 나왔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집에 안 오고 뭐 하고 있어!!!"

   저녁 8시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엄청 엄했던 아버지 덕분에 엄마는 항상 8시만 되면 전화를 해서 들어오지 않은 자식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황해서 얼른 가겠다고 대답한 뒤 전화를 끊고 가게에서 내 소지품을 챙겨서 서둘러 나왔다. 소맥을 대신 마셔준 남자애와 메이커와 공주들이 말렸지만, 아빠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면 새벽까지 잔소리를 들어야 했으므로 과감히 뿌리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니, 아까 그 남자아이가 어느새 정류장에 나와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문득 그 애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라고 궁금증이 생겼지만, 가방 안에서 다시 지지잉하고 전화가 요란하게 울려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나중에 그 애가 칠공주의 남자 친구의 절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다시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칠공주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기 때문에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내 생애 첫 (술을 대신 마셔준) 흑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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