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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Sep 20. 2021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 1호는?

인터넷 비밀 번호를 잃어버렸을 때 물음의 답변

 내가 굳이 그렇게까지 크게 적을 필요가 있었냐며 빈정대던 언니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적힌 초록색 바구니의 반의 반의 크기도 안될 만큼 작았던 내 보물이 우리 집에 처음 온 건 고등학교 3학년, 엄마가 크게 아프고 나서였다. 엄마가 자주 놀러 가는 시골집의 할아버지가 키우던 똥개가 새끼를 열 마리나 낳자 벽돌색의 고무다라이를 엎어 놓고 그 안에 키우고 있더란다. 고무다라이를 열어 안을 보니 눈도 아직 제대로 뜨지도 못하는 꼬물이들이 이리저리 쓰러질 듯 걸어 나오거나 뛰어나오거나 하는데 한 마리만 저 구석 벽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단다. 손을 내어 그 강아지의 목덜미를 잡아 끄집어내서 눈을 마주쳐 보니, 얘는 내가 거둬야겠다 싶어 그냥 무작정 집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고무다라이=고무 대야 경상도 사투리


 상구는 짧은 흑색의 털을 가졌고 족보는 알 수 없으며 상구의 엄마 이름은 진미라고 했다. 내 손 두 개를 포개어 놓은 크기만 했던 녀석이 일 년도 되지 않아 이게 다 컸는 게 맞나 싶을 크기가 되었을 때 수의사에게 물어보니 성견이 맞다고 하여 그런 줄 알았다. 종아리 근처에 오는 상구의 키에 비해 얼굴이 살짝 컸고 얼굴의 상부는 검었으나 하부는 하얬다. 시바견의 눈썹 같은 하얀 동그라미 스티커가 눈 위에 붙어 있어 왕왕거릴 때마다 슬쩍슬쩍 올라갔다. 바닥에 드러누워 까뒤집으면 노란 끼가 도는 허연 털 배가 보였다. 새끼였을 때 축 늘어져 반으로 접힌 귀가 그의 매력이었으나 커가면서 뾰족한 삼각형으로 꼿꼿하게 세워지는 것이 내심 아쉽긴 했지만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상구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다.

 우리 집은 약간 경사가 있어 기울어진 골목 안 쪽 집이었다. 골목을 따라 오르면 집 안 내부로 발자국 소리가 쿵쿵 울린다. 신기하게도 상구는 집 안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가는 발소리가 누구인지 기가 막히게 알아챘다. 나나 엄마인 경우 골목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뱅글뱅글 돌면서 꼬리를 헬리콥터마냥 세차게 휙휙 돌려대며 신나서 와와왕하고 짖어댔고, 조금 덜 좋아하는 사람이 오면 꼬리는 살랑대나 제자리만 왔다 갔다, 낯선 이가 오면 사납게 크르릉 와왕 해댔다. 일본에서 열 달 유학을 하고 집으로 오는 날, 상구는 내가 집 앞에 있던 전봇대에 다다랐을 즈음 한껏 들뜨고 가벼운 와와왕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리에 아 내가 이제 정말 집으로 돌아왔구나 하고 실감이 났었다.


 누구에게도 터 놓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상구 귀에만 속닥속닥거렸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크게 싸우고 눈물, 콧물 줄줄 흘려가며 집으로 씩씩대고 들어와서 상구의 동그란 스티커 사이에 손가락을 밀어 넣고 훌쩍대면서 간지럽히면 어느새 울음이 잦아들었다.

 털이 듬성듬성 빠지는 털갈이 시즌에 흑색의 털 아랫부분의 하얀색 털이 비집고 나오면 나는 그 털을 솎아내고 수욱 잡아당겨서 뽑아 털공 뭉치를 만들었는 데 이게 은근 스트레스가 풀려서 털갈이할 때를 기다리곤 했다.

 산책을 하러 나갈 때마다 똥꼬에 불이 붙은 마냥 로켓처럼 대문 밖으로 뛰쳐나가서 동네를 휘젓고 다녔지만 실은 겁보항상 럭키 슈퍼에서 호수 미용실까지만 뛰어 당기는 녀석만의 이상한 동선이 있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리본을  뽀오얀 몰티즈의 꽁무니만 쫓아다녔기 때문에 나는 혹시  녀석이 그녀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는 않을까 몰티즈 주인의 눈치를 보며 매번 줄을  쪽으로 힘껏 당겼다.

  

 벚꽃이 지고 매미가 세차게 울고 은행이 떨어지고 얼음이 꽁꽁 얼던 때가 열세 번 지날 동안 상구는 나의 곁에 있었고, 다시 벚꽃이 지고 매미가 세차게 울던 팔월 그날에 나를 떠났다. 절대 잊지 못할 슬로모션으로 저장되어 있는 내 인생의 가장 슬픈 기억 조각을 만든 날이 바로 그날이다.

 



   


 그날은 늦은 휴가로 주말을 아는 동생들이랑 1박 2일을 보내고 집으로 막 돌아왔는 날이었지만 15일 월요일이 광복절이라 공휴일이었으므로 다시 놀러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언니가 근처에서 살다가 먼 곳으로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구경 겸 언니네 집에 가서 놀고 자고 와야겠다 싶어 채비를 했다. 마당에 상구가 오랜만에 풀려서 마구 헤집고 뛰어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나가는 순간, 대문의 틈 사이로 로켓이 발사될 거 같아 조심조심 살짝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척도 없이 녀석이 어느새인가 내 뒤에 있었고 눈치채지 못 한 내가 문을 살짝 여는 순간 종아리 사이로 뛰쳐나가 버렸다. 정말 순간이었다.

  나는 당황하여 뒤쫓아 달렸지만 그의 속도를 따라가기는 역부족이었다. 고삐가 풀린 녀석은 계속해서 냅다 내달렸다. 아는 사람이 쫓아오면 호수 미용실 라인도 뛰어넘어가 버리는 그였기에 뒤돌아 내가 따라오는  확인하고 안심하여  폭주하기 시작했다. 코너를 따라 도니 열대야로   이루는 할머니  분이 미용실  철물점 평상에 나물을 한가득 펼쳐 놓고 소란스럽게 수다를 떨며 다듬고 있다. 마침 모퉁이 횟집 삼거리를  지난 싼타페  대가 골목 어귀에서 몰기에는 과한 속도로 빵빵 클랙슨을 울리며 들어왔다.

그리고  일이 일어났다.

차주인은 앞을 향해 달리던 상구를 미처 보지 못하고 그의 몸을 바퀴로 깔아뭉개며 타고 넘어왔다.  작은 보물은 싼타페가 짓이기고  피가 흥건히 새어 나오는 아스팔트 바닥에 힘없이  쳐져 쓰러져 있다. 나는 동네가 떠나갈 듯한 괴성을 질렀다. 혀가 풀려 나와있고. 침을 질질 흘리고. 눈의 동공에는 초점이 없고. 온몸의 뼈는 으스러져 있는 상구를 안아 들고 힘이 풀려버린 쓸모없는  다리를 원망하며 도로가로 뛰어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탔다. 척추가  조각이 나서 상구의 똥오줌이 새어 나와 바지에 스며들었다. 뿌옇게 흐려진 눈을 안간힘을  또렷이 뜨고서 녀석을 바라보니 쉐엑쉐엑 힘겹게 금방이라도 끊어질   쉬며   안에 기대어 있다.

쉐엑쉐엑쉐엑쉐엑..쉐엑.........쉐엑...........................쉐엑.

점점 내쉬는 숨소리가 아득하게 옅어져 갈수록 겨우 뜨고 있던 내 두 눈도 같이 뿌옇게 짙어져 급기야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구는 더 이상 쉐엑 거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 몇 달간 우리 집을 갈 수가 없어 언니네 집에서 생활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삼거리가 보이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가 나왔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 동안 한없이 나를 원망했다.

왜 하필 그날 언니 집을 갔을까.

대문을 열 때 잘 보고 열걸.

내가 좀 더 빨리 병원에 갔더라면.

쫓아가지 않았더라면.

 




 며칠 전 메일 계정 하나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다시 설정하려고 하자 내가 처음에 가입할 때 선택했던 질문이 튀어나왔다.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 1호는?"

 내 소중한 상구의 이름을 꾸욱 한 자 한 자 눌러 입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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