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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나은 Oct 02. 2021

홀로 떠났던 여행의 후유증

현생 일주일간 정신 못 차린 이야기

 나 혼자 떠나는 여행을 제주도로만 두 번을 다녀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두 여행의 목적지가 제주도가 되었다. 처음으로 홀로 떠난 여행은 재작년 5월쯤이었고, 두 번째는 일주일 전에 다녀왔다. 재작년의 첫 여행의 기억은 쓸쓸했으므로 다음에 다시는 혼자서 여행을 다녀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번 여행은 '혼자'이고 싶었고 '쓸쓸함'이 필수 조건이었다. 그래, 되려 그것들을 추구하는 여행이 되었다.


 나는 한 여름에 들려온 어떤 소식에 지쳐있는 상태였고, 조용하게 나를 보듬어줄 장소가 필요했다. 십여 년간의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결혼과 출산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일주일 이상 휴가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이틀만 휴가를 내면 주말을 양끝에 붙여서 최장 9일간 쉴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당장 회사에 연차를 내고 제주도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고민 없이 한 번에 다 예약을 했다. 에어비앤비와 블로그를 뒤져가며 사람이 잘 찾지 않고 풍경이 아름다운 마을에 산책길이 잘 되어 있는 곳을 검색했다. 그러다 찾아낸 숙소 두 곳을 각각 5박과 2박으로 예약을 했다. 8박 9일의 일정에 하루만 호텔에서만 보내고 나머진 민박과 펜션을 묵기로 한 것이다. 내가 계획한 대로 제주 여행을 하는 구일 동안, 나는 마음껏 산책하고 조용하게 글도 쓰고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서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엽서도 쓰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지금이 너무 소중해서 안 쓰고는 못 배기는 글'은 그곳에서 남긴 추억이다. 내가 꺼내 보고 싶을 때 남기는 글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제주 여행의 후유증은 내가 올 거라 예상했던 파도보다 무지막지하게 크게 나를 때렸다.

 

 나의 하루는 암막 커튼 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닿은 핸드폰의 알람 소리로 시작이 된다. 알람을 듣고도 벌떡 일어나지 않아 알람은 십분 간격으로 세 번 정도 더 울린다. 힘겹게 눈을 뜨면 어슴푸레 들어온 빛에 비친 침대 옆에 쌓아놓은 책들에서 제주도 종달리의 소심한 책방에서 사 온 읽다만 '수상한 기록'의 글자가 보인다. 선물을 보내려고 책상 위에 무심하게 던져 놓은 제주 기념품과 엽서를 보면서 우체국에 갈 시간이 날까를 멍 때리며 계산을 해보다가 도저히 분명 야근이 만연할 이번 주에 가는 것은 무리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분명 같은 새소리인데도 제주도의 새는 훨씬 가볍고 경쾌한 짹짹이 었었는 데 지금 들리는 도시의 새들의 소리는 우울한 째째이다. 쩨쩨한 소리이다.

 

 한껏 꾸며봤자 혼자 회사에 앉아서 컴퓨터만 할 거라 면 티에 고무가 들어간 벨벳 팬츠를 대충 입고 철이 지난 버켄스탁 샌들을 신고 자크가 없는 천가방을 어깨에 메고 회사로 터널 터널 걸어가니 내 머리 위에는 제주에도 내리쬐고 있을 가을 햇살이 내려온다. 눈을 감고 잠시 그곳에서 느꼈던 햇살을 기억해보려고 하지만 뜨뜻미지근했는지 쨍하게 타는 느낌이었는지 아니면 포근하게 감쌌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회사에서의 시간은 한정적이다. 그 한정적인 시간 안에 제출해야 하는 수많은 리포트들과 주어진 업무를 하나씩 도장 깨듯 격파를 하다 보면 어느덧 밖은 어둑해져 있다.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오렌지 빛의 가로등을 머금은 방파제에 걸터앉아 바라보던 제주의 밤바다로 당장 달려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비록 내일 아침에도 쩨쩨한 새소리를 나는 들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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