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ENFJ-T 이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도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니?"
며칠 전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이런 말을 듣고 나서 문득 예전에 했던 MBTI 적성 검사가 궁금해져서 다시 해보았다. 처음에 대유행하던 몇 년 전에 검사를 했을 때 무슨 유형인지를 잊어버렸고 관련된 유명인만 기억이 났었는 데, 이번 검사도 동일한 유명인이 나온 걸 보니 나의 유형은 일관된 게 확실하다. 역시 MBTI 검사가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을 지도.
난 전인구의 2%에 해당하는 ENFJ-T 유형에 속한다. 분석된 성격의 결과를 읽어보다 보니 유독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바로 이 유형의 사람들은 타인을 잘 신뢰하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지나치리만치 깊이 관여한다는 점이다.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고 가장 먼저 쓴 글이 있다. 바로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나에 대한 프롤로그 같은 글인데, 사실 이 글에는 두 가지 비화가 있다.
<내가 발행한 첫 글 나에 대한 프롤로그>
하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몇 달 키우는 와중에 사람들이 내 나이에 비해서 나를 너무 어리게 보는 바람에 퍼스널 브랜딩을 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사실은 나의 직업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드러내길 꺼려했었는 데 어쩔 수 없이 언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프로필이랑 소개글에 '나는 생각보다 오래 사회생활을 했고 내 일에는 어느 정도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정에 그냥 이름을 올리기보다 '과장'이라는 직함을 일부러 붙이고, 직장인의 브이 로그와 같은 피드도 올리면서 조금씩 팔로워들에게 이미지가 바뀌어 갔다. 그런 와중에 브런치 작가가 한 번에 되고, 나에 대한 글을 드러내면서 지금은 어린 나이의 '관종'인 여자 아이라기보다는 오랜 기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회사원'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로, 감사하게도 내가 가진 SNS 채널을 통해서 브런치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꾸준하게 유입이 되고 있다. 나를 브랜딩 하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한 단계씩 밟아서 올라가고 있지 않을 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두 번째는,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흔들리거나, 목적을 잃고 방황할 때 가장 먼저 쓴 나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쓴 다른 글보다 명시성이 강하게끔 적었다. 마침 이 글을 읽은 아는 동생이 조심스럽게 운을 띄우며 나에게 질문을 했다.
"언니, 그 사건이 뭔지 물어봐도 돼?"
이에 대한 답변에는 사람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를 해봤냐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그 사건 자체를 공개할 작정으로 글로 풀어내려는 생각은 아직 없지만, 어쩌다 휘말리게 되었냐에 대해서는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사건은 내가 믿는 사람에 대해서는 무한으로 신뢰를 한다는 기반에서 출발이 된 것은 확실하다. 중간에 의심되는 정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서는 항상, '사람이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어. 아닐 거야. '라고 백 프로 결단을 내렸다. 내가 좋아하고 봐 왔던 사람들 중에서 작정을 하고 남을 속이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실존했고, 난 당시에 그런 존재 자체를 내 편협한 시각으로 삭제를 하고 출발을 했기 때문에, 관련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나의 의심이 합리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는 내가 나쁜 사람인 거처럼 느껴졌다. 반복적으로 일어난 일은 결국 내가 정상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모든 일이 밝혀졌을 때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 나 혼자만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 남겨져 있었다.
우리가 드라마나 책에서, 주인공에게 어떤 큰일이 일어나면 각성을 하고 지금까지와는 180도로 사람이 바뀌어 전혀 다른 삶을 살거나, 복수를 하는 이야기를 많이 본다. 과연 실제 삶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일 년 전 그 일을 겪을 때와 지금의 나는 겉으로 보면 주변인들이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된 것은 맞다.
나도 그런 줄 알고 있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까지도 세상에 좋은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니?"
하지만, 며칠 전에 들은 지인의 질책하는듯한 이 질문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국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내가 겪은 경험이라면 앞으로 사람을 절대 믿지 못하고 혼자서만 살아야 하는 데 나는 또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고 있다. 혹은 내가 누군가의 곁에 다가가고 있다. 이게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당한 상처를 다시 사람에게 치유를 받고 있는 내가 보인다.
때로는 오랜 기간 동안 알고 지냈던 이들이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보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는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들이 울림이 크게 올 때도 있다. SNS 계정으로 알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분이 몇 분 계시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서운 일이다.
타인에 대해 경계하라고 당부하는 내 머릿속의 경고가 부디 내 마음에도 전달되기를 바라보지만 잘 되지 않을 거 같아서 불안 불안하다. 제발 바라고 바라건대, 부디 내 곁에 좋은 사람들만 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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