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진 불면증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는 오래된 나의 병. 바로 불면증.
누워있으면 수 만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저어 다니며 가지를 뻗어나가듯이 하나씩 피어오른다.
명상 앱이 좋다 해서 눈을 감고 잔잔한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나오는 앱을 흘려보기도 하고, 유튜브의 신비로운 우주에 대한 내레이션이 도움이 된다고 하여 틀어놓고 귀 옆에 두니, 순차대로 달을 지나 목성에까지 닿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도 잠이 오질 않아 꺼버렸다.
어두 먹먹한 방구석 침대에서 휴대폰을 켜놓고 인터넷 여기저기를 기웃기웃거리다가 이내 눈이 아파 휴대폰을 배 위에 내려놓고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서 생각에 잠긴다.
그러니까 오늘이 며칠째더라. 바로 잠에 들지 못한 게.
어제는 몇 시에 잠들었지. 그저께는 언제 잤지.
열 시간 정도 밤부터 밝아오는 아침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잔적이 언제더라.
아냐.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에 자자. 눈을 감자. 눈을 감았는데도 천장이 보이잖아.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네. 에라 그냥 다시 눈 뜨자.
며칠 전 들린 너의 소식은 내 불면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잊고 지냈던 그날의 기억이 우연히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생생하게 다시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일 년 전.
짐 보따리를 들고 법원 앞에서 너를 기다렸지만 나에게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는 문자 한 통만을 남기고 너는 잠적했다. 일주일 내내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이미 앙상하게 말라 뼈가 다 보이는 손목을 가누며 꺼져버린 전화기에 수십 번이나 '제발 전화 좀 받아..' 하고 울부짖었다. 후드득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랗게 소나기로 변해 내 발 앞에 물 웅덩이가 생기길 시작했다.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짐 가방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에 적셔진 양쪽 어깨가 빗물에 스며들었다. 튀어나온 어깨뼈를 가느다랗게 떨면서 그렇게 오래도록 흐느끼고 흐느꼈다. 그래. 그날 그렇게 나는 어떤 사람에게 큰 배신을 당했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내 머리 위로 보이는 천장이 저리도 높았던가.
'죄를 모두 인정했다고 합니다.'
인정했다고? 그럴 리가. 내가 아는 너는 절대 죄를 인정할 사람이 아니다. 거뭇한 속으로 이번에는 또 어떤 수작을 부리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새빨간 새치 혀를 놀리면서 모면할 생각만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너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
드러나는 치부가 무서워 싸매고 꽉 닫아놓는다.
열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오늘이 잠을 못 잔 지 며칠째더라.
어제는.. 그저께는.. 언제 잤지. 내일은 또 언제 잘 수 있지.
머리만 대면 잔다는 사람이 너무나도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