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 <눈의 여왕> 재해석 글
커다란 저택에는 한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난방을 켠 적이 없다. 추위에 약한 편인데도 어째서인지 이곳에 있으면 전혀 춥지가 않았다. 겔다를 보내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하면 되나요? 전 이제 다 버렸어요."
"너에게 요청하는 것은 딱 두 가지야. 하나는 앞으로 넌 내 집에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선 안돼.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들은 너를 위해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어. 또 하나는 내가 어떤 책을 주면 그 책에서 단어 하나를 찾아야 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난독증이 있어서 글을 읽을 수가 없어. 찾는 단어는 "영원"이라는 글자이고, 이 단어가 들어가 있는 하나의 문장 전체를 나에게 읽어 주길 바라. "
굳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으니 첫 번째 조건은 오히려 내게는 좋은 조건이었는데 두 번째 조건을 듣고는 매우 놀랐다. 나의 큰 빚을 고작 이런 일로 탕감을 해주다니.
갑자기 그녀가 지금껏 힘들게만 살아온 내게 진정한 한 줄기 빛과 같은 구세주처럼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그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그녀의 외모 역시 내가 본 여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제야 그녀를 알게 된 거지.
탁. 방안으로 책 하나가 던져졌다.
"나는 볼일이 있어서 이제부터 나가. 언제 돌아올지는 몰라. 약속한 대로 그동안 '영원'을 찾아줘."
그녀가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면서 말하고는 혼잣말로 다시 중얼거렸다.
"만약.. 내가 없을 때 영원의 문장을 찾는다면....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책은 1000페이지 분량으로 꽤나 두꺼웠고 빼곡히 글자가 가득 차 있다. 다만, 글 하나가 문장으로 완성은 되어 있었지만 중간에 특정 단어들이 비워져 있다. 주석처럼 하단에는 공란의 단어에 대해 상세한 뜻풀이가 나와 있어 이를 보고 맞추는 식이다. 그다음 문장을 읽을 때는 다시 하단의 설명을 읽고 전(前) 문장에서 풀었던 단어 글자 조합 중 하나를 선택해 해당 공란 단어의 시작 글자로 따와야 했다.
.........이 세계에는 증오와 1. ( )만 남아 있을 뿐 더 이상 회생 불능의 상태이다. 이 세계는 곧 2.( )할 것이다.....
1. 꿈이나 기대나 환상이 깨어짐. 또는 그때 느끼는 괴롭고도 속절없는 마음.
2. 망하여 없어짐.
홀린 듯이 풀기 시작했다.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영원'이 들어가 있는 문장을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온통 머릿속에 가득 찼다. 잠도 오지 않고 배도 고프지 않은 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 모든 신경은 그 책의 단어 퍼즐 맞추기에만 온통 쏠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