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타는 어른
사실 나도 그네 좋아해
아파트 건물 사이로 시원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를 눈 감고 들으면 숲에 온 듯하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이틀 동안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낮아진 온도와 함께 부는 바람이 제 계절을 느끼게 해 준다. 아침저녁과 낮에 기온이 달라 옷을 어떻게 입을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나는 어두운 하늘인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데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보이는 구름 없고 높아진 하늘이 상쾌하다. 같은 마음인 걸까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할머니와 외출을 하는 듯 두 줄로 맞춰 걸어가는 유치원 어린이를 보니 마음이 좋아진다.
옆으로 작은 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새벽에 스무 명쯤 어르신이 모여 아침 체조를 하고 점심이 지난 오후부터 열 명쯤 할아버지가 모여 바둑, 장기를 두고 저녁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모여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고 몇 개의 운동 기구로 운동을 하고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다. 더운 공기가 몸을 누르는 계절에도 집이 더 덥다며 저녁에 많은 사람이 공원으로 오고 더운기가 가신 요즘 날씨에는 날이 좋다며 더 많은 사람이 공원으로 모인다.
항상 사람이 있는 공원이지만 오전부터 그네가 바쁘게 움직인다. ‘그네는 오후부터 바쁠 텐데’하고 보니 어른이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다. 얼마나 힘찬지 보는 내가 다 시원할 정도다. 몸이 높이 오를 때 멀리서 보면 하늘에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다른 놀이터에서 어른이 그네 타는 모습을 보고 ‘그네 탄지 오래됐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다 커서 그네를 왜 타냐고 미운 소리를 하지만 그네는 가까이에서 스릴을 즐길 수 있는 놀이 기구이다. 동네에 놀이터가 많지 않고 많지 않은 놀이터에 그네는 단 두 개뿐이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시간에 어른이 그네를 타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그네가 한가한 시간을 노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저녁 산책 중 동생과 비어있는 그네를 보고 한달음에 달려가 신나게 탄 적이 있다. 발을 구르면 구를수록 더 높이 올라가는데 앞, 뒤로 최고점에 도달하면 몸이 기우는 느낌이 짜릿하다. ‘이걸 어떻게 서서 탔지’ 생각하며 다리를 헤엄치듯 움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네 주변으로 어린이가 모인다. 발과 땅의 마찰을 만들어 급하게 그네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네 주민이 운동할 수 있게 아침, 저녁으로 학교 운동장을 개방한다. 나는 매일 아침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많다. 잠을 이기고 며칠을 나가면 그 시간에 보이는 사람이 익숙해진다. 몇 사람은 운동하다 지나칠 때 인사를 건넨다. 더 말을 얹지 않고 아침 인사를 건네고 각자 운동에 집중한다. 이불에서 했을 많은 고민을 두고 오늘도 운동장에 나온 사람끼리 나누는 반가운 인사. 그 모습을 보면 나보다 더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계신 할머니께 알은체 할 수 있게 운동장에 익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해가 지기 전과 후에 학교에 모이는 사람들처럼 오전에 그네 타는 어른을 보면 반갑다. 그네를 좋아하는 어른이 또 있다니. 그네 타는 사람이 많아져 그네가 더 많아지고 그네가 많아지면 공원이 많아지고 공원이 많아지면 강아지도 사람도 모두 계절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질 텐데.
최근 다른 지역에서 폐교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되면 학교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사람이 빠져나가고 그렇게 되면 지역 경제가 무너져 지역 소멸 위기에 놓인다는 아주 생생한 이야기. 학교가 없어지는 일은 다른 지역만의 일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학교가 학생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주민에게도 필요한 공간이라는 것. 학교와 공원같이 주민이 언제든 갈 수 있는 공간을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요즘 나의 가까이에서, 바깥 멀리에서 듣고 보고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화단에 감나무 가지가 무겁다. 올해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기 때문이다. 이 감은 그 자리에서 새들의 간식이 된다. 감의 달기가 엄청난지 구멍 뚫린 감이 벌써 이만큼이다. 나는 우리 동네에 이런 모습을 보며 마음이 한없이 좋아진다. 나의 학교와 그네가 없어지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