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주처럼 기워진 삶에 대하여

by 스니


누더기가 아닌 '콜라주'의 삶

내 이력서를 처음 본 인사담당자는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짧은 근무 기간, 잦은 이동, 그리고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한 공백들. 누군가의 눈에는 ‘버티지 못한 실패의 기록’으로 보일 것이고, 때로는 나조차 내 이력을 그렇게 가혹하게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 경력을 ‘누더기’가 아닌 ‘콜라주(Collage)’라고 부르기로 했다.



콜라주는 서로 다른 조각들을 붙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가까이서 보면 엉성하고 파편화되어 있지만, 멀리 떨어져서 봐야 비로소 그 조각들이 모여 어떤 의미를 만드는지 드러난다.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몇 개월 간의 바이럴 마케팅 아르바이트 경험은 결코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다. 본업인 퍼포먼스 마케팅과는 무관해 보였던 그 일들 속에서, 나는 콘텐츠를 통해 소구점을 극대화하는 법을 끊임없이 다듬으며 마케팅 감각의 날을 세웠다.


면접관들은 공백기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어떻게든 마케팅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 ‘생존 근성’에 점수를 주었다.

또한, 짧았던 여러 번의 경력을 통해 나는 무엇이 잘못된 조직인지, 어떤 방식의 일은 내 영혼을 갉아먹는지 몸소 배웠다. 그것은 이론으로 배울 수 없는, 오직 현장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얻어낸 값진 데이터였다.



‘망한 김에 쓰는 생존기’를 마무리하며

망한 김에 쓰는 생존기’는 구조조정 직후 연재를 시작했다. 중간에 연재를 멈췄던 시기 역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 숨어버렸던 회피의 시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다 다시 미친 듯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그 실시간의 기록들을 이곳에 쏟아냈다.


이 시리즈 첫 화의 마지막 단락에 이렇게 적었다.

취업 준비, 재취업, 구조조정, 취준 회피, 그리고 다시 시작된 구직 활동까지. 2025년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그렇게 2025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망한 김에 쓰는 생존기’ 브런치북의 연재를 마무리지으려 한다.



이 브런치북은 실패의 나열이 아닌, 여기까지 살아남기 위해 내가 길바닥에서 주워 모은 파편들의 기록이다.


정직원 전환 제안을 받으며 ‘나도 쓸모 있다’는 감각을 조금이나마 회복했고, 스타트업 대표님들의 입사 제안을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곳에서 합격 소식을 받았다.

내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인사팀에서는 내가 이력서에도 채 쓰지 못한 무수한 ‘조각 경력’들 때문에 채용을 망설였다고 솔직히 전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건, 면접에서 나의 ‘아픔’을 털어놓았기 때문이었다.


면접 자리에서 퇴사 사유를 병력 때문이라 말하는 건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도 그동안 숱한 면접을 치르며 적당히 ‘그럴듯한’ 퇴사 사유를 꾸며내곤 했다.

하지만 가장 원했던 곳의 면접 당시 나도 모르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닌 속내를 터놓고 말하게 됐다. 또다시 거짓된 모습으로 입사해 나 자신을 속이며 버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 드러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사람의 역량을 믿어주는 곳에서 ‘진짜 나’로서 일하고 싶었다.


결국 그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인사팀의 우려 속에서도 채용 결정을 내린 건 면접관인 부서장님의 지지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 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의 해피엔딩은 아니다. 조각경력의 대가로 나는 ‘3개월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이라는 조건을 제안받았다. 이 또한 내가 치러야 할 '청구서'다.



물론, 여전히 ‘또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그 불안함이 나를 다시 끓는 물속으로 밀어 넣지는 못할 것이다.


설령 이 도전이 다시 실패로 끝나고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더라도, 나는 이제 안다. 나는 결국 또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바닥을 치고 올라온 근육이 있는 사람이니까.



아직 나의 그림은 미완성이지만, 또 그 자체로 완성작이기도 하다.

조각조각 기워진 이 콜라주가 바로 나 자신이며, 이 불안정한 조각들이 모여 나만의 가장 단단한 무늬가 될 것임을 믿는다.
망한 김에 시작한 이 생존기는 여기서 멈추지만, 나의 삶은 나만의 방식으로 계속될 것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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