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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un 22. 2018

일요일의 참치김치찌개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부터는 가족들과 트러블이 없어졌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싸움닭이었다. 내가 싸움을 거는 상대는 주로 엄마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일 때문에 싸웠는지 도통 모르겠지만, 그때는 신랄하게 치고받았다. 버럭버럭 대들고 소리 지르는 건 기본.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느냐"라는 말로 시작해서 "엄마가 이러니까 아빠랑 맨날 싸우지", "아빠가 왜 그렇게 엄마랑 싸우는지 알겠다, 아주!"라는 식의 못된 말까지. 그때 난 성질 내고 화를 내는 아빠를 싫어했고 한편으론 엄마를 안타깝다고 생각했는데도, 입 밖으로는 영판 다른 말이 쏟아졌다. 그냥 중2병을 앓았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


상처 주는 말을 당연하게 해대던 시절이었다. 밖에서는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고 들어오고, 다른 어른들한테는 온갖 착한 척을 하다가 집에만 돌아오면 별의별 막말을 쏟아내곤 했다. 하루걸러 싸우던 나날이었고, 급기야는 회사에서 일하는 아빠가 싸움을 말리려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내 모습의 일부분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날도 한바탕 싸운 날이었다. 엄마와 싸우고 나면 괜한 객기에 며칠 동안 말도 안 하고 밥도 먹지 않았다. 대개는 학교나 학원에 가니까 집에서 밥을 안 먹어도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 싸운 날이 토요일이었고, 그날 밤에도 밥을 굶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극심한 공복감에 일찍 잠에서 깼다. 너무 배고파서 머리가 핑핑 돌고 괜히 속이 메슥거리는 상황. 그렇다고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말을 걸기에는 자존심이 상하고. (사실 자존심은 이런 데 부리는 게 아닌 데 말입니다.) 그렇게 1~2시간이 흘렀고, 주방에서 엄마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모습을 봤다. 아, 내가 좋아하는 참치김치찌개! 먹을까 말까 고민을 100번 정도 한 끝에, 결국 난 조용히 밥상 앞에 앉았다.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 밥상에 갖다 놓는 걸로 사과의 마음을 대신하며. 전날 내가 퍼부은 상처의 말에 속이 상했을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다시는 얘기 안 할 것처럼 굴더니만, 배는 고파?" 하면서 핀잔을 줬다. 그리고 햄 반찬 같은 것을 내 쪽으로 슬그머니 가져다 놓았다.  


지금까지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음식을 꼽으라면, 난 그날 일요일 아침 밥상에 올라온 '참치김치찌개'를 꼽을 것이다. 지금도 참치김치찌개만 먹으면 생생하게 그날이 떠오른다. 엄마는 아마 모르겠지만, 그날 아침을 먹고 화장실에서 물을 한가득 틀어놓고 울었던 것도. 그리고 내가 몰랐을 엄마의 눈물을 짐작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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