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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an 19. 2017

낭만에 대하여



대학시절을 추억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어느 봄날 강의실에서의 기억이다. 시를 가르치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교수님의 전공 수업이었다. 약간 흐릿하긴 하지만 5월의 학교 축제 기간 아니었을까 싶은데, 강의실에 들어온 교수님은 이렇게 꽃 피는 좋은 날, 강의실에서 수업하면 되겠냐 하시면서 통기타를 치시며 노래를 부르셨다. 정말이지 멍청하게도 그 때 부르셨던 노래가 무엇인지 기억 나지 않는데, 어렴풋이 김광석 노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노래를 부르는 교수님의 목소리와 그 강의실을 둘러싼 분위기, 그리고 내가 꿈꿨던 대학의 낭만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그때의 황홀했던 기분. 공부를 1도 하지 않았던 '망나니 대학생'이었지만, 잘 들어왔구나 생각을 했더랬다.


또 하나의 기억 역시 그 교수님의 노래에 대한 것이다. 매년 봄이면 과 학부생과 대학원생, 교수님까지 모두 모여 3박4일 일정으로 '답사'를 갔다. 보통 낮에는 문학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들을 찾아가고, 밤에는 신명나게 술판을 벌이는, 과에서 가장 큰 행사인 셈이었다. 마지막 밤이었던가. 강당에서 장기자랑 비슷한 자리가 만들어졌는데, 하이라이트는 교수님의 무대였다. 다른 교수님들이 어떤 노래를 부르셨는지는 전혀 기억에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분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그 교수님. 그가 부른 노래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였다. 반주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럴 수밖에. 그 노래는 누가 뭐래도 교수님 그 자체였으니까. 원래도 좋아하는 노래였는데 그가 불러서, 그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하필 또 제목이 낭만에 대하여라서. 난 거의 넋을 잃고 그 노래를 들었다.


가끔 밤에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다가 최백호 아저씨의 라디오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김없이 노래를 부르시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연락드려야지, 생각한다.


https://youtu.be/7rU1zlGt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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