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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Jun 01. 2024

주휴수당

일주일에 다섯 번, 너는 마치...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는 오지은의 노래 가사처럼 운명 같았던 유와의 나날은 사실 엉망진창으로 짓이겨진 여러 색의 물감 덩어리 같았다. 서로 같은 점이 신기했고 다른 점은 달라서 호기심 가득했던 마음은 사실 3개월을 넘길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은연중에 타인도 내 마음과 같을 거라 생각하는 탓일까? 혹은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라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애의 확장이어서였을까?


사실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최소한 서른 해를 넘게 전혀 다른 지역과 환경 속에서 살아왔고 그 안에서 채울 수 없는 결핍의 서사가 있었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당연한 귀결이다. 상처와 상처를 비비면 덧나기만 할 뿐. 그럼에도 안간힘을 쓰며 껴안았을 뿐.



그렇게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끼리 고작 몇 개월을 붙어 지냈다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는 없었다. 사랑에 빠지면 궁금한 것이 많아져 늘 질문이 많아지는 나와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진다고 생각하며 질의응답을 하기보다 자연스레 알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유의 간극이 그랬듯이.


온전한 사랑을 누려볼 수 없었던 나는 그를 통제하려고 했고, 유는 자신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이 관계의 구도는 전형적인 불안형 여자와 회피형 남자의 서사로 흘렀다. 조금 아이러니한 점은 두 사람 모두 불안과 회피가 혼재되어 있는 혼란형 애착이었다는 점이었지만.


우리 사이의 틈은 계속 벌어졌고 담은 높아졌다. 같이 지낸 지 9개월이 되었을 무렵 유는 직장의 이슈로 나의 집을 떠나게 되었다. 분리가 이별과 동의어는 아니었음에도 나는 강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거의 3주 가까이 히스테릭하게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단언컨대 살면서 이렇게 많이 울었던 적이 없었다. 소위 본연의 나답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유에게 상당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알더라도 멈추기 어려웠다.


떨어져 지내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만나고 매일 통화를 하겠다고 유는 내게 약속했고 그 약속을 제법 성실하게 지켰다. 하지만 매일을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다 분리된 상황에서 불안이 낮아질리는 없었고 그렇게 쫓는 자와 달아나는 자의 평행선 같은 러닝은 만난 지 1년을 앞두고 끝이 났다. 입장에서는 이해 가지 않는 사유로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1년간의 통화 로그가 1300개가 넘었던 우리의 첫 번째 이별이었다.



이별 이후, 정말 필사적으로 지냈다. 헤어지기 삼일 전 입사회사에 이를 악물고 적응하려 노력하고 대학의 중간고사를 치렀다. 식단을 포함해 고강도의 근력 운동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싫었던 운동의 고통마저 이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종의 강박이었다. 적어도 헤어질 때보다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그모든 것에 힘들고 지쳐 내가 필요해졌을 힘을 다해서 그를 한 번이라도 끌어올려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삶을 살아내도 밤이 오면 잠이 들지 않았다. 그리움에 매일 숨이 막혔다.


차가운 말로 얼어붙은 톡을 매만지다 기절하듯 잠에 들면 꿈에 유가 나왔다. 꿈에서도 서운하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꿈속에서 전화로, 문자로, 톡으로 연락이 왔다. 일주일에 다섯 번쯤은 꿈에서 그나타났다. 마치 주휴수당이라도 챙겨주어야 것처럼.



그날은 조금 달랐다. 헤어지고 나서는 오히려 울지 않았었는데 어째선지 마음이 겨워 펑펑 눈물을 쏟아 지쳐 잠이 들었던 날. 꿈속에는 역시 유가 등장했고 깨고 나면 기억하지 못한 무의미한 대화 속에 배경음악이 들렸다. 감미로운 음색에 무슨 노래지? 하며 귀를 기울이자 노래는 점점 선명해지더니 정작 유의 목소리와 모습이 사라졌다. 순간 놀라서 몸을 일으키며 잠에서 깨버렸다.


오늘도 꿈이었구나. 허탈한 마음에 꿈속의 노래를 생각해 내려 음을 허밍 하기도 하고 누구의 목소린지를 생각하다가 가사 두어 마디가 생각이 났고 생각난 가사를 검색하니 그 노래의 제목을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날 힘들게 만들어 갑자기 내 마음 자꾸만 멍들게 해
얼마나 얼마나 잠 못 들게 하는지 고요한 내 마음 항상 시끄럽게 해

[잠이 오질 않네요 - 장범준]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나와 같은 지독한 불면의 밤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이런 근거 없는 추측만으로도 희미한 기쁨이 찾아왔다. 꿈에서 5일제로 유를 만날 있었기에 치열하게 낮을 살아내고 잠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다 눈물이 터지면 나의 고양이는 유가 자던 자리에 와서 나를 달래듯 밤과 새벽을 지켜주었다.



주말에는 불면의 시간이 더 길어지고 참다못한 나는 결국 유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음이 다섯 번 울리자 전화를 끊었다. 받지 않을걸 알기에. 다음날 낮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전화가 왔지만 일이 끝나면 다시 건다는 말 이후 또 연락은 없었다.


그리고 1주일 뒤, 새벽에 전화가 왔다. 예전엔 흔하게 해왔던 것처럼 아침이 오기 전까지의 긴 통화였다.


    "나는 진심으로... 자기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이렇게 되고서까지 아직도 참는 거야?"

    "응? 뭐가?"

    "자기와 상관없이도 내 삶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거야? 아니면 우리 관계에서 행복하길 바란다는 건지. 아직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어?"

    "당연히 나로 인해 그러길 바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럼 더 말하지 마. 알았으니까. 사실 오늘 전화로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못 그러겠어."


이렇게 오래 통화할 생각도 없었다며 통화가 끝날 무렵 유가 말했다. 나에 대해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서 자신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며. 3주의 부재동안 나는 많은 자아성찰을 했고 그걸 4시간 동안 유에게 전했다. 재회 성공이 목적은 아니었다. 이별도 유가 나에게 준 것이라 그가 내게 준 많은 것들을 감사하고 싶었고 진심으로 행복을 빌었다.


우리는 계속 만나기로 했다. 1주년이 되기 6일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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