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라서 훨씬 더 강력해지는 순간들 모아보기
파리에서 스투어브릿지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행복하다. 파리-암스테르담-버밍엄을 거쳐오는 일정에 항공사의 실수로 내 짐은 암스테르담에서 나를 따라오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홀가분하게 백팩 하나 메고 공항을 나섰고 마트에서 칫솔과 갈아입을 속옷, 양말을 사고 나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
평소의 나와 다르게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맞아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 (영국)가도 될까요?'라는 질문에 바로 "네!"라고 응해준 그녀와 함께 OK를 해준 그녀의 남편. 이렇게 처음 만난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지만, 동시에 반가움에 꼭 껴안은 우리 둘은 십수 년 알고 지낸 언니 동생처럼 스스럼이 없었다.
또 하나의 행복했던 순간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이틀 먼저 돌아가고 나는 빈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빠리지앤느 친구가 함께 남아주었고, 자신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파리를 나와 함께 다녀주었다. 그는 일행 중 한 명의 남편으로 이번 프랑스 여행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친구가 되었는데, 4명이서 북적이던 집에 혼자서 외로울까 나보다 먼저 마음 써 주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정말 고맙다.
덕분에 나의 마지막 날은 풍성해졌다. 루브르 박물관과 팔레로얄(Palais Royal)를 지나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고, 파리에서 가장 비싼 알렉산더 3세 다리를 건너 그랑팔레(Grand Palais), 쁘띠팔레(Petit Palais)를 지나 걸으면서 파리 곳곳의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파리는 내 마음속에 다시 오고 싶은 도시 1위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에서의 한 달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그 한 달을 돌이켜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하다. 행복이 즐거움이나 재미, 기쁨과 어떻게 다를자 가끔 생각해보는데, 행복에는 뭔가 속깊이 차오르는 '충만함'이 있다. 안 먹어도 배부르고 핫팩을 품은 듯 따뜻한 느낌이다.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4명, 때로는 5명이 함께 하면서 있었던 사건들을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지만 우리는 '친하다' 이상으로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갔고, 좀 더 끈끈해졌고, 좀 더 단단해졌다. 물론 서로의 다름을 더 많이 확인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배움을 얻은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여행을 떠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마르세유에서 해변도로를 따라 달리는 꼬마 기차에서 본 지중해 풍경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유명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Basilique Notre-Dame de la Garde)까지 가는 기차인데, 마르세유에 와서도 리모트로 일을 하고 있던 친구와 마음먹고 나선 나들이라 무척 신이 난 상태였다.
굽이진 해변도로를 따라 기차가 돌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푸르디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고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리고 바다를 맞이할 수 있는 2층 발코니가 있는 하얀색 집을 사서 리모트 워크 하우스를 만들어보겠다 호언장담해버렸다. 그 위에서 24시간 지중해를 맞이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이 모두는 즉석에서 만들어진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스마트 워크 디렉터로 수년간의 경험을 쌓았고, 이번 여행을 주도해 준, 바로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지중해 바다는 그저 아름다운 바다로 끝났을 것이다.
다시 스투어브릿지. 이곳은 영국 중서부의 소도시이지만 나에겐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일단 유쾌함으로 중무장한 동생이 생겼고, 한국에서 온 또 다른 '퇴사자 동기'를 만났다. 그들과 김치찌개, 삼겹살, 떡볶이와 김밥으로 이어지는 한국 요리들을 함께 준비하며 하하호호 즐겁다. 그리고 그 만찬을 즐기며 또 한 번 더 행복하다.
어제는 가족들과 베프들을 초대해 열어준 하우스 파티로 광란의 밤을 보냈다. 처음 만나는 이들이었지만 누구도 어색함에 굴복하지 않았다.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대화가 무르익어갈수록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어색함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가라오케 나잇!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로 내가 수줍게 마이크를 잡으려던 찰나, 우리가 사랑하는 휘트니 언니를 위한 여성 멤버들의 떼창이 시작되었다. "I decided long ago~"천장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렀고, 듣는 이들은 배를 잡고 바닥을 치며 웃어댔다. 노래는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그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BTS의 'Dynimite'와 'Butter'를 랩 한 소절도 놓치지 않고 불러주었다. 물론 엉망진창이었지만 엄청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날의 사진을 한 장도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이날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과거의 나는
가고 싶은 곳을 가서,
사고 싶은 것을 사서,
먹고 싶은 것을 먹어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해서 행복했다.
아니 행복한 줄로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서,
사고 싶은 것을 함께 골라서,
먹고 싶은 것을 함께 먹어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함께 해서 행복하다.
이번 여행에서 단 하루도 온전히 혼자 있었던 적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그리고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를 계속 알아가고 있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일행들과도 친구가 아닌 가족과 같은 소중함을 느꼈고, 처음 만나는 이들과도 마음이 연결된 듯 교감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내가 보는 것, 내가 먹는 것, 내가 지나치는 모든 것들이 훨씬 더 강력해졌다.그렇게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이 쌓여가고 있다. 그렇게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