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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Feb 06. 2022

상황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가봐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찾아서..

 문득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가 궁금해졌다. 이미 지나갔을지도, 지금일지도, 혹은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단어는 한 번으로 단정하기 힘들고, 행복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 꽤나 복합적이어서 선뜻 답을 내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저 질문을 글로 써봐야지 했던 약속을 하루아침에 지키기가 사실 쉽지 않았다.  


긴 시간 (사실 고작 일주일 정도긴 하다..)을 고민하며, 내 인생의 명장면들을 머릿속에서 흘려보냈다. 주마등처럼, 파노라마처럼, 3인칭 시점의 소설처럼.

그중 몇 번이고 되감기 하고 싶은, 형광펜을 죽죽 그어가며 보게 되는 장면에 멈춰, 잠시 '행복'이라는 감정이 맞는지 멈춰서 본다.




Scene 1

20대의 어느 날, 나는 이별을 했다. 20대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진하게 겪었을 사랑과 이별. 이별의 문턱에 서 있는 내가 보인다. 왜 헤어졌는지 묻고 싶지 않다. 사랑의 끝은 각자의 이유가 있을 터이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단편적인 이유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싶다.

다만, 여기저기 들리는 노랫말의 가사가 내 얘기 같다는 말이 납득되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한심한 누군가가 안쓰럽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들을 애처로워하는 걸 보면, 제대로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작은 자취방을 나와, 오랜만에 고향집으로 향한다. 4시간 남짓 걸리는 버스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늘 4시간 내내 깨지 않고 잠을 자던 나는 없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옆 자리에 앉은 사람이 계속 실눈을 뜨고 몸을 뒤척거린다.


보통 고향 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데 옷이 그게 뭐냐. 살이 좀 쪘냐. 등등.. 하지만 엄마는 본능적으로 퉁퉁 부어있는 딸의 얼굴을 보고 멈칫한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의 말에 나는 참아왔던 울분을 엄마 앞에서 토해낸다. 엄마에게 안겨서 펑펑 울고 있는 내 모습. 참으로 어색한 광경이다. 평소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다는 건 좀 낯간지러운 상황이다.


"엄마 나 헤어졌어.. 내가 차였어.  말이 돼?"

"아이고 우리 아가... 괜찮다 괜찮다.."


이전까지 내 기억력이 닿을 수 있는 평생 동안 '아가'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펑펑 우는 딸에게 엄마는 우리 딸, 우리 아가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거기다가 맨날 밥을 많이 먹지 않는다고 잔소리하는 엄마도 없었다. 늘 엄마는 내 방 화장대 위에 내가 좋아하는 죽과, 빵을 올려두었다. 먹으면 먹는 대로, 먹지 않으면 먹지 않는 대로. 엄마는 나의 슬픔을 기다려 주었다. 집에 있는 3일 내내, 엄마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잠이 들었다.


가장 슬펐던 그 순간, 이상하게 행복했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그때의 내가 이상하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서 선명하게 멈춰서있었다.



Scene 2

2015년, 첫 아이를 출산했다. 겁 없이 선택한 자연주의 출산. 나는 무통주사도, 절개도 없이, 심지어 의사 선생님도 없는 조산원에서 출산하기로 되어 있었다.

출산이 임박했던 그날 밤, 조금씩 다가오는 진통을 참으며 새벽까지 잠도 한숨 못 잤다.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코를 골며 잠든 남편을 깨워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조산원에 도착해, 자궁문이 꽤나 많이 열렸음을 알고 산파 선생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곧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말에 이 정도 고통이면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아이는 생각만큼 호락하지 않았다. 미칠듯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관자놀이가 찌릿해온다) 고통이 7시간 넘게 계속됐다.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해 본, 호흡법은 말을 듣지 않았다. 계속 얼굴에 힘이 들어가 금세 얼굴의 모든 핏줄이 다 터져 있었다. 이게 눈물인지 땀인지 콧물인지 금세 얼굴과 머리카락은 정체모를 액체로 뒤덮여 있었다.


미칠 듯이 반복되는 이 고통을 더 이상 참기 어렵다고 판단한 순간, 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구급차 불러줘, 그냥 제왕절개 할래"

"그럴래? 알았어 바로 불러줄게"

1초도 망설이지 않는 남편의 대답에 나 역시 1초의 거리낌 없이 다시 말을 주어 담았다

"아니야. 그냥 다시 좀 해볼게. 지금까지 참은 게 아까워서라도 그냥 해볼게. 나 당 떨어지니까 초콜릿 같은 거 줘봐..."


허둥지둥 초콜릿이 없다며 이거라도 먹으라며 건넨 청포도 사탕을 입에 물고 다시 수중분만이라도 해볼까 싶어 욕실로 향했다.

순간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을 보니 이 어마 무시한 고통보다, 내가 이런 꼴을 하고 있다니, 거기다가 남편에게 보이고 있다니 순간 나도 모르는 자괴감, 슬픔이 몰려왔다.

더 크게 울었다. 내가 자초한 고통이지만, 감당하기 벅찼던 이 고통이 배가 되었다. 다시 침대로 가 누워, 남편에게 물었다.


"나 정말 못생겼지? 너무 추하지 않아?"

그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게 말했다.

"아니, 제일 예뻐. 지금 네가 제일 멋지고 예뻐"

"웃기네..(으아)..."


이 모든 고통, 감정을 고스란히 그대로 품고, 8시간 만에 우리는 3명의 가족이 되었다. 미칠듯했던 육체적 고통과 함께 가장 행복하고 찬란한 감정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다. 가장 추했을 나의 얼굴을 마주해주었던 남편의 모습과 함께 말이다.


 



 행복의 순간이 뭘까. 고민하던 2주 동안, 나는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 인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 보았다. 힘든 순간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며 '사람을 통한 기적'을 알아가는 주인공 '동백이'에게는 행복이 뭘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 악물고 살아가는 동백이에게 용식이가 나타나, 조금씩 변해가는 동백이.

또다시 들이닥친 위기의 상황에서 동백이가 웃으며 용식에게 말한다.


"저 요즘 최악이에요. 까불이는 턱밑이고, 그리고 가게 만기는 코앞이고, 애 아빤 진상이고, 출생의 비밀도 다 뽀록나 버렸잖아요. 근데 이상하게 제가 요즘 제일 많이 웃는 거 같아요.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건가 봐요. 저 요즘 진짜 좋아요. 용식 씨가 좋아요"


동백이가 말하는 것 같다.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이다.


KBS 드라마 ‘동백꽃필무렵’


이래서 내가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강렬하게 멈춰서 있었나 보다. 세상이 모두 무너져버릴 것 같았던 순간에 말없이 나를 안아주고, 기다려주던 엄마가 있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던 출산의 고통에도 나를 예쁘다고 토닥여주던 남편이 있었다.

그렇게 행복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이별, 고통의 시간들이 행복이라는 섬광으로 반짝일 수 있었던 건 오롯이 나와 함께 해준 '사람' 덕분이었다.


 요즘 버겁고 힘들다 싶은 상황들이 스멀스멀 다가온다. 이 상황 속에서 나름 '행복'의 정의를 내리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냥 똑같이 나를 관통하는 상황 속에 믿고 의지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내가 있고, 사람이 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분명히, 행.복.의 순.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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