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SO WHAT?

나는 게으른가 게으르지 않은가에 대한 질문

by GALAXY IN EUROPE

지난주 퇴사를 한 지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월요일부터 코워킹 스페이스로 스터디 카페로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출근하라고 한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돈을 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를 잃고 싶지 않나? 그렇지, 한 번 잃으면 회복이 쉽진 않지. 뭔가 벌써 계획하고 있나? 조금 쉬어도 괜찮을 텐데.'


그녀에게 물어보진 않으면서 혼자 질문들을 이어갑니다.


'나는 벌써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는데 뭐 하는 걸까?'


앞선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다 걷어내면 남는 것은 바로 이 질문이겠지요. 그리고 나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퇴사 후 6개월 하고도 몇 주가 지났습니다. 날짜까지 세고 있는 걸 보면 신경이 많이 쓰이나 봅니다. 이 괴로움을 또 다른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분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난 갤럭시가 부지런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 게으르다는 것과 같은 뜻일 텐데 다르게 들렸습니다. 게으르다고 하면 기분이 상하거나, 의기소침해지면서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데, '부지런하다', '아니다'는 그저 사실 명제인 거죠.


저는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겠다는 결심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루를 수많은 할 일들로 채우는 것을 싫어합니다. 시간 단위로 쪼개서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이 문장들을 쓰는 와중에도 그래도 괜찮지 않냐며 온갖 변명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스스로에 대한 이러한 자책과 변명은 게으름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망설이거나 번복하면, 어떤 약속을 해놓고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갈등관계에 놓이면 우리는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결국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수많은 상황적 변수들이 얽혀 있고, 그 원인이 꼭 '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자책과 변명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죠.

나는 부지런하지 않다. (Photo by Alex West on Unsplash)

지금도 내가 게으르다고 자책하고 변명거리를 생각할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나의 부지런하지 않음을 보완해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책은 마음을 무겁게 하고, 변명은 머리를 복잡하게 합니다. 그 상태로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고 계속 지금에 머무르게 되면서 문제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거죠.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그래서 오늘을 끝으로 게으름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그저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제 할 일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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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 자체가

내가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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