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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있나

내 마음속의 지옥을 만드는 법

by GALAXY IN EUROPE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습니다. 얼마 전엔 자전거를 타다가 더위 먹을 뻔했습니다. 40여 분을 타고 잠시 쉬려고 앉았는데 머리가 핑 돌면서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겨우 진정하고 돌아오는 길엔 빨리 가려고 애쓰지 않고 천천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더위에 녹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은 저는 가만히 있는 시간,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시작은 달콤했습니다. 시원한 실내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아실 거예요. 누군가와 부딪힐 필요도 없고, 뜨거운 공기를 마시며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아도 되고, 땀 때문에 끈적거리지 않아도 됩니다.

세상 내가 다 쓰는 것 같은 무념무상의 즐거움 (Photo by Shazmyn Ali on Unsplash)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갑니다. 인친들의 피드에 좋아요를 날리고 댓글을 달다 보면 30분이 훌쩍 지나 있고, 조금만 더 하면서 피드와 스토리, 릴스를 보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1분처럼 지나있습니다. 뭔가 손에 잡히는 일을 해야지 싶다가도, 유튜브를 여는 순간 다시 알고리즘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그렇게 해는 중천에 떴다가 집니다. 다시 내일의 해를 기다립니다.


이 편안함과 즐거움은 빠져나갈 수 없는 '지옥'이 됩니다. 정말 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일만 해놓고, 그 일마저도 온갖 핑계를 붙여서 최대한 뒤로 미뤄놓고, '조금만 더'를 외칩니다. 머리는 멍해지고, 몸은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지만, 마음은 달려오는 급행열차에 쫓기는 기분입니다. 지금 당장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딪힐 듯하던 열차는 저를 통과해 지나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다음 열차의 기적 소리가 들립니다.

멀리서 달려오는 내 마음의 급행열차 (Photo by Adryan RA on Unsplash)

사후 지옥을 믿진 않지만, 지옥이 바로 이런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너무 쉽게 빠질 수 있는 '미루기'의 지옥입니다. 단순히 느리고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을 습관적으로 미루면서 지금 이 순간의 안락을 누리고 있지만, 마음은 하지도 않은 일을 계속하면서 불안에 떱니다. 이미 피곤하지만 이루어진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을 할 때 가장 힘든 순간은 일을 시도하기 전이라고 합니다. 0% 상태에서 100%를 생각하면 해야 할 것도 엄청 많을 것 같고, 아직 해보지 않았으니 여러 변수에 대한 걱정도 될 겁니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걱정만 하고 있을 때보다 마음이 훨씬 가벼울 수 있겠죠. 그런데 미루면, 일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로 계속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지옥을 만드는 것, 생각보다 참 쉽죠?

배우기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단어 'procrasinate' = '미루기' (Photo by Radoslav Bali on Unsplash)

그렇게 오늘은 미루지 않고 글쓰기를 2시간 여만에 마쳤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을 쓰면서 마음이 무척 홀가분하네요. 글쓰기를 미루지 않고, 인스타 릴스나 유튜브 쇼츠에 빠지지 않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시작했습니다. 이 느낌을 기억하면서 이번 여름을 잘 보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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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변화 자체가

내가 그리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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