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여혜]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작은 선택과 오해들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을 만들어냈고,
그들이 그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어보였다.
여혜는 비극의 중심에서 태어난 아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가족들이 처참하게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가족을 살해한 이들이 진짜 가족이라고 나선다. 자신을 위해서 그들을 죽였노라며.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도망치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죽지도 못한 채 그녀는 눈을 똑바로 뜨고 이 모두를 지켜봐야만 한다. 충격과 고통에 정신을 잃었다 차리기를 반복하면서, 그리고 악몽에 놀라 깨어나 꿈보다 더 끔찍한 현실에 짓눌리기를 반복하면서.
제멋대로이지만 남을 위할 줄 알고, 호기심 많고 덤벙거리지만 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아이였던 여혜는 산산이 부서진다. 복수만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이유가 되었지만, 그녀의 복수는 분노도 원망도 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는 그녀가 고통 끝에 선택한 것이 복수이다. 그녀의 눈은 체념과 공허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의지만큼은 굳건하다.
먼저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줄거리 리뷰를 하려던 것은 아니다보니 글을 읽고 뭔 소린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으리라 싶다. [여혜]는 심연의 어둠과 심야의 고독처럼 내게 다가왔다. 웹툰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가볍게 접근했다가 몇 날 며칠을 힘들었는지 모른다. 처음엔 여혜를 보기가 아팠고, 죽은 이들이 불쌍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등장인물 모두가 가여워졌다. 죽인 자도, 죽임을 당한 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도 모두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천인공노할 악인은 아무도 없었지만, 얽혀 들어가는 삶의 수레바퀴 속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 또한 없었다.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다. 그 상황 속에 나를 대입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각 주요 등장인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글을 더 읽기 전에 웹툰을 또는 대략적인 줄거리를 아래 링크에서 보고 오시면 좋겠다. 무거운 주제가 힘들지 않다면, 웹툰 보시길 추천하는데, 비나리 작가의 웹툰은 그림도 아름답지만 인물들의 대사가 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선들을 섬세하게 살려내 주기 때문에 웹툰을 직접 보신다면 이 글을 더 읽지 않아도, 아니 어쩌면 이 글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지금 하려고 하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아닌 동생 충위군을 왕에 올린 선왕과 자신이 아닌 충위군을 사랑했던 죽은 부인, 자신이 아닌 충위군을 아버지라 여기는 여혜에게 화가 많이 나 있다. 왕이 된 동생을 죽여 왕위에 오르고, 하나뿐인 딸 여혜의 슬픔은 아랑곳없이 공주의 역할을 강요하는 모습은 자신밖에 모르는, 포악하고 잔인한 악인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어린 시절 그는 동생을 아꼈다. 그래서 선물 받은 인삼도 나눠주고, 책만 읽는 동생의 건강을 걱정해 사냥대회에도 참석시켰다. 하지만 돌아온 건 동생을 음해하려 했다는 오해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해도 충위군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수신군은 더 이상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정식 간택을 거쳐 맞이한 부인마저도 충위군의 연인을 자신이 뺏은 것이란다.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인이 일부러 유산하는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고, 그는 점점 더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며 자신을 거스르는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결국 자신과 충위군 사이를 이간질했던 이들을 죽이려다 유폐되고, 아들을 낳지 못한 부인에 대한 폭행을 일삼다가 딸도 부인도 잃게 된다.
여기까지만 봐도 뭔가 억울하다. 수신군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에게 갚아주고,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자식을 갖기 위해 애썼을 뿐이이다. 그는 부처와 같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수신군이었다 해도 똑같이 행동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모두가 합쳐진 결말이 이토록 처절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수신군의 선택도 물론 달라졌겠지만 저지르기 전에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은 인간에게 없기에 비극은 계속 이어진다.
동생을 죽이고 왕이 된 것도 그에게는 자기 것을 정당히 되찾은 것이고, 자신의 딸을 속여 데리고 있던 이에게서 딸을 데려온 것 또한 꼭 했어야 할 일이다. 따라서 자신을 거부하고 죽은 충위군을 찾는 여혜는 제정신이 아니므로 어서 빨리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그의 당위성은 여혜의 삶을 또 다른 지옥으로 몰고 가게 된다.
교연은 공주이지만 산골에서, 친부가 아닌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며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 여혜를 구하고자 한다. 중인 아버지와 몰락한 양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양반 자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강한 권력과 높은 신분은 절대적이다. 그런 괴롭힘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이 여혜와 그녀의 오빠 현야(실제로는 충위군의 친아들)였기에 교연은 그들의 비밀을 알게 됐을 때 더욱 여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된다.
감춰진 진실을 밝히고, 여혜를 본래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교연.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혜가 아닌 스스로를 부조리한 현실로부터 구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살아남기 위해 중인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버지와 교연을 무시했고, 교연은 공부를 잘할수록 '중인 주제에' 공부를 잘한다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런데 실제로 왕족이면서 산골에서 약초를 캐고 담금주를 담그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현야의 말은 그를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은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데, 왕족이면서 지금에 만족한다고 말하다니. 그것이 위선이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교연은 여혜를 구하기 위해 여혜가 보는 앞에서 충위군과 현야를 죽이기에 이른다.
저지르고 나서야 무언가 한참 잘못되었음을 느낀 교연이지만 상황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여혜가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아주고자 벌인 일인데, 여혜가 생의 의미를 잃고 계속 죽으려고만 하자 교연은 자신을 향한 복수심이 그녀를 지탱해줄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으리라 믿고 기꺼이 악역을 자처한다.
아이 때부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교연의 서늘한 눈매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포자기한 듯 어떠한 부당한 요구나 괴롭힘도 무시하듯 받아들이는 흔들림 없는 그의 눈이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여혜라는 목표가 생겼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머리 장식(=왕관)을 가지게 해 주마 했던 약속을 끝내 지켜내지만, 그렇게 해서 과연 여혜는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반대로 교연이 신분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여혜와 알콩달콩 잘살고자 했다면 그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그의 선택과 행보에 대해서 함부로 얘기하긴 어렵겠지만 가져보지 못한 행복을 좇기만 하다 생을 마감한 인물이라 가장 안타까움이 컸던 듯하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모든 것은 이미 벌어져 있었다. 그녀의 아비는 동생의 연인을 빼앗아 혼인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그녀였으므로.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불행을 보지 못하게 한 가짜 아비와 모든 것을 까발리고 그녀를 지옥의 한 복판에 데려다 앉혀놓은 친아비 중에 그녀는 누구를 더 원망해야 할까?
대혼란 속에서 여혜는 악몽에 시달리다 못해 깨어 있을 때도 헛것을 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친다. 궁궐 밖으로 도망치기도 하고, 물에 뛰어들거나 자해를 하며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써보지만 헛된 노력일 뿐이다. 태어남이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녀는 마음대로 죽지도 도망치지도 못하고 지내다 친부인 수신군과 교연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겉으로 보기엔 궐내 생활에 익숙해져 슬픔도 아픔도 서서히 아무는 것 같지만 평온 속에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은 바로 지옥의 시작이었다.
수신군이 죽은 뒤에도 이 둘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는다. 둘을 둘러싼 정치적 세력 간의 갈등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마음속 깊이 뿌리박은 애증은 이미 삶 속에 녹아 있어 분리할 수 없게 된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교연에게 풋풋한 연정을 품고 있었던 여혜는 그런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죽인 것을 더욱 용서할 수 없고, 동시에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갈수록 깊어져 둘이 생을 마감하기 전에는 사라질 수 없을 듯이 보인다.
인간은 누구나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살다 죽을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누군가는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아름답다 했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살 가치가 있다고도 했다. [여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끔찍하지만 아름다운 지옥이다. 어쩌면 여혜의 주인공들은 한 발 한 발 스스로 그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옥은 죽어서 갈 곳이 아니라 나와 네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알지 못하는 미래를 놓고 만들어가는 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지옥에는 나를 괴롭히고 벌을 주는 악마는 존재하지 않고, 벌을 받아야 하는 악인도 없다.
하지만 미래를 몰랐다고 해서 이 지옥을 정해진 운명이라 보기는 어렵다. 수신군과 충위군, 교연과 여혜, 여혜의 모친과 외조부 등 [여혜]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떠밀려 다니기보다는 처해진 상황과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을 위한 결정이든 희생과 사랑의 결심이든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발생하는 미래라는 것이 중요하다. 나쁜 미래와 좋은 미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선택의 과정을 거치고 후회와 아픔과 가끔 찾아오는 기쁨과 만족감까지 거치고 그 끝에 다다르기만 하면 된다. 그 끝에서 지옥같은 삶이 지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