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속 드미트리, 이반, 알료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즐거웠습니다. 이름만큼 어려운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에 발을 들였고, 도스토옙스키와 평생 사랑에 빠지신 석영중 교수님을 만났고, 함께 읽는 분들과 깊지만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도 나눴지요. 이런 걸 여한이 없다고 하나요? 모든 건 즐거웠으면 됐으니까요. 그래서 리뷰 쓰는 걸 잊을 뻔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 담기 어려운 감흥을 글로 풀어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지 싶습니다.
그럼 오프닝은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제게 “어둡고 어렵다”는 생각에 학교 졸업하고는 읽을 생각도 않고 있었어요. 고전 살롱 모임에서 간혹 들리는 그분의 이름에는 고개만 끄덕이다 흘려보내곤 했지요. 하지만 이번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면서 만난 '도'작가님은 고뇌에 빠진 엄숙한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는, 사건을 흥미롭게 푸는 능력을 가진 수다쟁이였어요. 특히 고전 살롱을 통해 참여한 석영중 교수님의 <팬데믹 시대의 도스토옙스키, 그 희망과 갱생의 서사> 강연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석영중 교수님의 설명으로 만난 도스토예프스키는 '삶'에 대한 고민이 누구보다 치열했던 작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18세 때 이미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래와 같이 글을 썼다고 하는데요.
"인간과 인생의 의미를 연구하는데 저는 꽤 진척을 보이고 있어요. 제 자신에 대해 확신이 서고 있습니다. 인간은 신비 그 자체입니다. 우리들은 그 신비를 풀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평생을 보낸다 하더라도 결코 시간을 허비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고 싶기에 나는 이 수수께끼에 골몰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동물을 품고 있기도, 성인을 품고 있기도 한 인간의 이중성과 절대적(보편적)인 고통과 상대적(개인적)인 고통을 겪는 인간, 그리고 이 모두를 겪고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인간의 유한성에 초점을 맞춰 "비극적 인간"을 들여다봅니다. 성인이고자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동물적 본성에 인간은 괴로워하고, 전쟁과 질병, 각종 재해와 같은 이겨낼 수 없는 절대 고통 앞에 무력해하며, 나만의 고통의 깊이를 남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좌절하기에 인간의 삶은 비극적인 것이죠. 이러한 비극적 삶조차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끝이 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도 작가님이 인간의 삶을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만 봤다면 그의 작품들이 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철학적, 종교적 의미를 가지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삶이 이렇게 비극적이지만 인간은 "다시 태어나는 존재"로 언제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추구한다고 설명합니다. 희망이 있는 것이죠. 인간은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미완결의 과정"입니다. 갑자기 인간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human being"이 떠오르는데요. "human"이 아니라 뒤에 진행형의 분사 "being"이 붙었다는 것은 "계속해서 인간인 채로 있기 위한 노력"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인간이라면 계속 스스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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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있는 이처럼 열렬하고 거친 삶을 향한 갈망을 이길 만한 그런 절망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 문제는 삶에, 오로지 삶 하나에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삶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지 그 삶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석 교수님의 강연자료 중에 위 내용이 있었는데요. 추가로 찾아보니 도스토옙스키는 평소 삶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9개의 목숨을 가지고 있다 믿어졌던 '고양이의 생명력'에 비유했다고 해요. 절실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책 이야기는 언제 할 거냐고 물으신다면 그 삼 형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열정과 욕망의 아이콘 첫째 드미트리, 지성과 과학을 대표하는 둘째 이반, 영성과 사랑을 구하는 알료샤(알렉세이) 카라마조프까지 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대변하는 인물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이러한 성향들이 조금씩 다르게 녹아있죠. 사랑으로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알료샤를 제외하고는 드미트리와 이반, 아버지 표도르와 그루센카, 카타리나까지 등장인물 모두는 서로 갈등을 겪습니다. 돈과 사랑을 갈구하며, 옳고 그름을 판정하며 서로 대립하죠. 알료샤 또한 이러한 상황 속에 사제로서 내적 갈등을 겪습니다. 이러한 연속된 갈등 속에 각자는 자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 때로는 어쩔 수 없다는 절반은 포기 상태로 - 선택을 하고 방황을 하다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아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을 맞습니다.
이를 계기로 자신밖에 모르고, 흥청망청 난잡하게 생활하던 드미트리와 신의 세상을 부정하고 오로지 논리에의 귀결이 절대 선인 것이라 여기던 이반의 삶은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되는데요. 이는 도스토옙스키적인 "다시 태어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극도로 이기적이고 자기 방어적이던 이 두 형제가 자신들이 "짓지 않은 죄에 대한 참회"를 하는 모습에서 많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돈과 사랑을 놓고 아버지 표도르와 첨예하게 대립하며 그를 죽이겠노라 공공연하게 외쳤던 드미트리는 실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음에도 그 죄의 대가를 받는 것이 자신인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이반도 아버지와 형을 경멸했던 자신의 영향을 받아 스메르쟈코프가 아버지를 죽였을 거라는 의심이 들자 이를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 괴로워합니다. 알료샤 역시 이 둘을 지켜보며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알료사의 서사가 적었던 점은 아쉬웠습니다.
이번 리뷰는 거장의 소설에 대한 저의 전반적인 감상이었을 뿐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통해 도스토옙스키가 전하는 메시지는 삶 전체를 엮어냈다고 할 정도로 방대해서 한 번 읽고서는 도저히 책의 일부를 담기에도 저의 이해도가 택도 없이 미약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읽고 삶의 희망을 찾아냈다는 점에서는 아주 큰 수확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그럼 다음 재독(再讀) 리뷰는 어떤 생각을 갖고 쓸지 기대하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