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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Apr 13. 2023

초인의 삶을 들여다보다

[클래식 클라우드 006] 헤밍웨이 - 백민석

백민석의 헤밍웨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헤밍웨이는 초인의 삶을 살았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가늠할 수 없는 사이즈의 삶"에 감탄한다.

어떻게 그는 그 많은 글을 쓰고,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사고를 당하고, 그 많은 병을 앓고, 그 많은 여행과 이사를 다니고, 그 많은 연애를 하고, 그 많은 전장을 쫓아다닐 수 있었을까. 그에게 주어진 한 시간, 하루, 일 년은 내게 주어진 한 시간, 하루, 일 년과 다른 길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 (중략) ... 그는 어떻게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평생 체험할 수 있는 사건의 총량을 한참이나 초과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 클래식 클라우드 006 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by 백민석

나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같은 책제목 외에 그의 삶에 대해 알지 못했기에, 이 책의 프롤로그를 읽으며 헤밍웨이에 대해 급관심이 생겼다.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실패한 지점에도 이르지 못한다."고까지 표현하는 걸까. 그리고 헤밍웨이는 왜 그렇게 많은 일들을 했으며 그렇게 해서 무엇을 얻었을까.


책 속에서 그의 행적을 따르며 헤밍웨이가 사용해 유명해진 표현들이나 글쓰기 기법, 참전했던 전장과 방문했던 장소와 축제 등 수많은 키워드들 중에서 아래 세 가지 키워드 - 고국이탈자(expat, expatriate), 남근중심주의, 자전적 소설 - 에 대한 나의 이해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고국이탈자(expat, expatriate)

헤밍웨이는 미국인이지만 대부분의 삶을 유럽 등지에서 보내고, 이때의 경험을 작품으로 남긴다. 그리고 자신을 비롯해 고향을 떠난 이들을 '고국이탈자'로, '땅과의 접촉을 상실'한 사람들이라 칭한다.

“그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시나? 그대는 고국이탈자야. 왜 뉴욕에 살지 않지? (…) 그대의 문제가 뭔지 아나? 고국이탈자라는 거야. (…) 그대는 고국이탈자야. 땅과의 접촉을 상실했어. 너무 고급이 돼버렸고, 가짜 유럽 표준 때문에 망쳐버렸어. 죽도록 술 마시고, 섹스에 사로잡히지. 일은 안 하고 말만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내. 그런 고국이탈자 맞지?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고 말이야.” — 『태양은 다시 뜬다』, 157~158쪽

고국이탈자는 추방도 망명도 아니지만 자신만의 이유로 고향을 등진 사람들로 여기서 '이탈(離脫)'은 본래 속해 있던 어떤 범위나 대열에서 '자발적으로' 떨어져 나옴을 뜻한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한 곳에서 완벽한 삶을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좋을 줄 알았는데 별로 일 수 있고, 좋았다가도 싫어질 수도 있고, 더 좋은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자유롭게 떠나면 된다. 그들은 이미 떨어져 나온 존재들이므로.

Photo by Charlotte Noelle on Unsplash

물론 '일은 안 하고 말만 하면서 시간을 다 보'낸다고 헤밍웨이도 스스로 썼지만, 이들이 산업적 근면성을 갖춘 존재들이었다면 과연 우리가 고전이라 일컫는 가치 있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자신이 속한 사회를 깨고 나와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정면충돌하며 이를 자신의 작품에 소화시키고, 다시 새로운 곳의 새로운 경험을 찾아 떠나는 끊임없는 도전이야말로 헤밍웨이를 비롯한 20세기 작가들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을 고취시키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난 3개월 동안 헤밍웨이의 표현을 빌어 '땅과의 접촉을 상실'한 채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말라가, 영국 스타우어브리지를 다녔다. 유명 관광지와 유적을 둘러보거나 멋진 해변과 따스한 햇살을 느끼거나 평범한 작은 마을의 골목을 걷거나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볼 때도 아주 집중했다. 처음 보는 과일과 채소, 향신료와 소스, 와인과 음료들을 보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소한 날씨 변화와 사람들의 스타일에도 영감을 받기 일쑤였다. 헤밍웨이의 발끝도 따라가지도 못하겠지만, 매일 영감과 자극을 받는 삶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줬다.


남근중심주의

헤밍웨이는 다른 어떤 작가보다 남성 중심적이고, 남근중심주의(인간과 세계의 중심에 남근을 놓고 보는 주의) 경향이 강한 작가이다. 약 100년 전의 시대상이 그러했고, 그의 어머니와의 골이 깊은 갈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많은 여성들과 싸웠다.


어머니와의 오랜 갈등은 물론 자신을 후원해 준 거트루드 스타인과의 절교, 반복된 4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헤밍웨이를 묘사하는 절묘한 한 문장이다. 모든 경쟁에서 승리해야만 했던 호전적인 성향의 헤밍웨이에게 '여성'이란 존재는 '남성'과는 또 다른 형태의 경쟁상대가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거부할 수 없이 매력적이지만 - 그러니까 어머니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4번이나 결혼을 했을 터이고 - 남성과는 다른 속내를 파악하기 어렵고, 입는 옷에서부터 걸음걸이, 관심사 등 현저하게 차이나는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연약해 보이지만 사내를 휘어잡는 - 아버지를 망친 어머니와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처럼 - 여성을 상대하기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여성을 파악하기를 포기하고 단편적이면서도 남성에게 유리한 여성상으로 묘사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헤밍웨이는 삶의 경험도 많고 어디 한 군데 머무르지 않는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단 몇 줄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단편적이고 단조로웠다. 그런 여성들과 그 자신의 반영인 남성 주인공들은 대개의 경우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 클래식 클라우드 006 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by 백민석
Photo by Michael Prewett on Unsplash

이렇듯 그의 세상은 남성(남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헤밍웨이야말로 여성이 없이 남성이 살아갈 수 없음을 몸소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싶다.

어니스트는 대작을 쓸 때마다 새 여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단편소설들과  『태양은 다시 뜬다』를 쓸 때 한 여자가 있었다. 이제 폴라인이 있다. 『무기여 잘 있거라』는 대작이다. 또 다른 대작이 나오면 우리는 어니스트에게 또 다른 여자가 생긴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피츠제럴드가 캘러헌에게
— 『헤밍웨이 1』, 288쪽

그의 부인들이 부유한 출신으로 '경제적으로 안락한 생활을 제공'해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작을 나오게 한 안락함은 단순히 경제적인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읽기광이자 쓰기광인 헤밍웨이가 오롯이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안락함 이면에는 그의 남근중심주의 성향을 포용할 수 있는 배포 큰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또 한 번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자전적 소설

그의 소설들은 유난히 자전적인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다. 진실한 사건, 진실한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그였으므로, 소설에 자전적 요소가 많은 것은 당연했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을 쓰면서 진실하기란 어렵다.
- 클래식 클라우드 006 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by 백민석

이 책을 읽으면서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하고, 산에 오르고, 바다에 나가며,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다니! 헤밍웨이야말로 정말 대. 단. 하. 다. 고인에 대한 무례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엽총으로 생을 마감한 그가 저세상에서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정도로 그의 삶과 죽음은 어느 소설보다 더 극적이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Photo by Nick Fewings on Unsplash

소설은 '픽션(fiction)' 즉, '허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진실성'이라니. 말이 안 되는 듯도 보이지만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는 만큼 쓰는 소설이야말로 직접 경험하지 못한 우리 같은 독자들이 '사실에 가깝게 경험'하고 이를 토대로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헤밍웨이의 소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제대로 접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소설을 어떤 방식으로든 평하기는 이르다. 그래서 고전살롱에서 함께 읽을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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