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 매트 헤이그
죽음을 두려워한 때가 있었습니다. 지은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가면 어떡하지,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면 어떡하지, 어둡고 숨 막히는 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 죽을 때 아프면 어떡하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과 끝나지 않을 고통에 대한 공포가 저를 잠식했지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었어요. 손목을 그으면 얼마나 오래 아플지, 물에 빠지면 숨이 막혀 괴로울 테니 차라리 약을 먹고 죽는 게 제일 낫겠다 하다가 죽은 내 시체를 봐야 하고 치워야 하는 사람에게 큰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단번에 생각을 접었습니다. 단번에 모든 것을 끝내버리는 것이 일희일비하며 지지부진 삶을 끌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때였죠.
하지만 언젠가 지금 이 순간의 나에 집중하면서, 신과 나, 너와 나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죽음을 아직 겪어보지 못했지만 죽음이라는 것의 무게가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어떡하지?!'하는 걱정도 '죽고 싶다!'는 삶에 대한 부정도 옅어졌다고 할까요.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인지 자살을 실행한 노라의 이야기 <미드나잇 라이브러리(Midnight LIbrary)>에 무척 공감하면서도 한 발 떨어져서 그녀의 여정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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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자살을 생각했고, 여러 차례 실행에 옮겨 거의 성공할 뻔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판타지적임에도 읽으면서 실제에 있었을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졌는데요. 노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순간까지 일어난,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들이 그녀를 얼마나 또 어떻게 숨 막히게 하고, 절망하게 했는지, 이후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들어서는 그녀의 얼떨떨하고 이해 안 되는 기분까지도 실제처럼 다가왔습니다.
유명 작가가 된 후 매트 헤이그는 자신의 우울증과 젊은 시절 자살 시도에 대해 인터넷에 공개하는데요. 위 트윗을 읽어보면 자살을 시도할 때의 노라의 심정과 다시 삶으로 돌아왔을 때의 노라의 믿기지 않으면서도 다소 홀가분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노라는 도서관에서 학교 도서관 사서였던 엘름 부인을 만나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다른 선택을 한 자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선택의 결과는 알지 못한 채, 그 선택을 한 자신의 지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 모든 상황이 노라에게는 도서관이었다면, 노라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 휴고에게는 비디오 가게였는데요. 나에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한대의 평행우주를 연결해 주는 장소는 어디이고, 가이드는 누구일까? 나에게는 어떤 평행우주들이 존재할까? 그중에서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요즘 유럽을 여행하며 바닷가를 산책하고, 공원에서 큰 나무 밑에서 햇볕을 피하며 자연이 얼마나 내게 긍정적 효과를 주는지 느끼고 있는데요. 도서관이나 비디오 가게처럼 인공적인 실내보다는 커다란 나무들로 가득 찬 바닷가 옆 숲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나무마다에 매달린 나의 평행우주를 선택할 수 있으면 합니다. 그리고 가이드는 영화 <반지의 제왕> 속 갈라드리엘(케이트 블란쳇 役) 같은 현명하고 신성한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한국말이 아닌 엘프어로 이야기해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는 모두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저의 평행우주는 2000년과 2004년의 선택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미국이 아닌 영국으로 유학을 갔더라면, 2004년 결혼을 했더라면 하는 아주 큰 ‘만약’이 있거든요. 그랬다면 제가 17년을 넘는 시간을 일에만 매달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잊고 살진 않지 않았을까요? 이후에도 2010, 2014, 2020년에 또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텐데… 하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요. 이런 상상들은 나름 즐거웠습니다. 그때 책에서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어요.
You are only limited by your imagination.
You can be very creative with
the regrets you want to undo.
현재형입니다. 너무도 당연하게 과거의 후회를 되돌릴 생각만 하고 있던 저에게 책은 지금을 이야기하고 있던 거에요. 선택을 했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시 할(undo)'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생각을 고쳐 먹고, 집중해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면 어떨까? 여기서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란, 후회 없을 완벽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이 선택에 최선을 다 했기에 이후 결과가 어떻든 수용할 수 있는 선택을 의미합니다.
노라를 따라 함께 했던 노라의 수많은 다른 선택의 삶들도 문제(flaw)가 없을 순 없었지요. 완벽해 보였던 애쉬와 몰리와의 삶조차도 노라가 머물 수 없는 원초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그 삶은 노라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던 겁니다. 영화가 시작하고 절반쯤 지나서 극장에 들어선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을 연기할 순 없잖아요? 즉, 노라는 완벽한 삶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고 살아온 삶을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배우고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도 과거의 선택에 대해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지를 고민해야겠습니다. 글의 마무리는 책에서도 인용되었던 까뮈의 명언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행복하려면 행복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찾아다녀서만은 안되고, 삶의 의미를 계속 찾기만 한다면 나는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다." - 알베르 까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