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종합건강검진
나이가 마흔이 넘으니 제법 베짱이 생겼다. 성인이 된지 무려(?) 20년이나 되기도 하고, 사회 생활도 10년 넘게 하면서 나름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런저런 일을 대체로 무난히 넘길 수 있다.
하지만.
40대의 내게도 1년 중 한번은 이 세상 누구보다 겸손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1년에 한번씩 받는 '건강검진'하는 날이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놀랍도록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바로 건강검진 결과에서 크던 작던 몸에 이상이 생긴다는 점. 30대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검사 항목마다 대체로 '정상 범위' 안에 있다.
하지만.
40대가 되어 받은 건강검진 때부터는 상황이 돌변한다. 30대의 나와 40대의 나는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건강검진 결과 수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혈압, 콜레스테롤, 요산, 당수치 등이 정상 범위를 넘어서거나 경계치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내 자산의 가치 그래프가 우상향을 해야하는데 건강 수치가 우상향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주변에는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동료, 당뇨병 진단을 받은 동료, 혈압약을 먹는 동료, (요산 수치를 낮추기 위해) 통풍약을 먹는 동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디 이런 일이 남에게만 일어나는 일일까? 나는 몇 년 전 갑상선에서 작은 암세포가 발견되어, 수술까지 했다. 일찍 발견했기에 갑상선의 절반을 떼어내는 반절제 수술을 했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암 진단, 암수술을 내가 경험할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1년에 딱 한번이지만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 다가오면 긴장이 된다. 괜시리 밥맛도 없는 것 같고, 건강 검진을 며칠 앞두고는 않하던 운동도 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각종 수치들이 우상향을 할 수 밖에 없는게 순리라면, 적어도 증가폭이라도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건강검진 며칠 전까지 긴장 속에 지내다 건강검진 당일이 되면 평소에 무교인던 나도 소위 '일회용 종교'도 생긴다. 이날만큼은 틈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해본다.
'저는 편안합니다. 앞으로도 잘 살겁니다.'
맞다. 검사 결과에서 각종 수치가 정상 범위 안에 들게해달라는 기도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한 가지 더있다!
건강검진이 긴장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위내시경 검사'이다! 처음 위내시경 검사를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검사실에서 들리던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우웩~ 우웩~ 윽윽~'
'환자 분 그러시면 더 힘드니 힘을 빼세요'
'우웩~ 우웩~ 윽윽~'
난 그때 생각했다. 목구멍으로 기다란 줄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구역질이 나지않고, 힘을 뺄 수 있다는 말인지... 그 어느때보다 힘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일텐데... 힘을 빼라니!!!
구역질을 쉴새 없이 했던 그 분이 수면내시경을 했는지 생으로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를 들었던 난 고민없이 '수면내시경'을 선택했다. 어짜피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적어도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내 몸 속에는 그 때의 두려움이 남아 있었나보다. 언젠가 수면내시경이 끝나고 간호사가 나를 깨우더니 초록색 물약을 건내며 말했다.
'환자분이 검사 중에 구역질을 너무 심하게 하셔서 목이 많이 아프실거에요. 그러니 오늘 집에 가서 이 약으로 가글하세요.'
분명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 말을 듣고나니 목구멍에 깊숙한 곳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검사를 매년 해야 하는데...
그래서 난 건강검진 때 2가지 기도를 한다.
1. 저는 편안합니다. 앞으로도 잘 살겁니다.
(건강검진 수치가 정상으로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
2. 저는 편안합니다. 오늘 검사 잘 받을겁니다.
(수면 위내시경을 받을 때 얌전하게 검사받게 해달라는 기도)
오늘 8월 22일은 2024년 건강검진 받는 날. 제일 마지막 검사인 내시경 검사 때 열심히 기도를 하자 수면내시경 회복실에서 간호사가 내게 말했다. (기도를 하자마자 수면유도제가 바로 몸에서 반응을 했는지 깰 때까지 기억이 없다)
'오늘 구역질을 심하게 하셔서 목이 좀 불편하실 수 있어요'
하... 오늘도 난리를 쳤나보다... 그래도 오늘은 정도가 약했는지 약을 받지는 않았다. 다행히 내 기도가 통했나보다!
잘했다, 잘했어. 블랙리스트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가지 않으면 된거다. 참고로 수면내시경 검사동안 난동(?)을 심하게 부리면 블랙리스트 명단에 들어가 다음 건강검진 때부터 수면내시경 신청이 불가능해진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었다.
오늘 1년 중 가장 겸손해지는 날을 잘 넘겼다!
이제 다시 내년까지 베짱있게 지내보자~
- grabhoh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