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더를 너무 깨끗이 청소한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 리코더 청소했어요?'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있는데 딸이 뛰어오더니 외친다. 무슨 소리인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어, 침이 계속 많이 닿아있어서 깨끗하게 청소를 했지.'
그러자 딸이 말했다.
'퉷퉷. 할아버지 리코더에서 이상한 맛이나요!'
저도 궁금해서 아버지에게 어떻게 청소를 하셨는지 물었더니, 약간 머쓱해진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가글로 먼저 청소를 하고, 비누로도 청소했지.'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식구가 눈이 동그래진다.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어머니께서 한 소리 하신다.
'건강 염려증이에요, 건강 염려증! 무슨 리코더를 가글로 청소를 해요. 그냥 물로 하면 되지.'
어머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말씀을 더 보태신다. 아버지를 슬쩍보니 계속 잔소리를 들으시다가는 삐짐이 오래가실게 분명했다. 그렇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다.
'딸, 리코더 냄새 빠지게 세면대에 물 받아서 담궈놓을까.'
이제야 어머니의 잔소리가 멈추고, 아버지 귀에 평화가 찾아왔다. 내 마음 속에서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오늘은 꺼내야 하는 날이 아니다.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버지도 나도 듣는걸 좋아하지 않기에 아버지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오늘 에피소드가 벌어진건 지난 3년간 우리를 괴롭힌 '코로나19'이다. 원래 '소독'에 대해 그리 신경쓰시지 않았던 아버지다. 하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아버지는 '청결'을 위한 물건들을 사시곤 하셨다. 아침에 출근길에 나설 때 현관문 앞에 쿠팡에서 온 물건들이 뭔지 읽어보면 알코올 소독약, 가글, 손 소독제...
게다가 아들들만 키워보신 아버지에게 하나 뿐인 손녀는 '소중함' 그 자체다. 몇 달 동안 학교에서 리코더 연습을 한다고 집에서 틈만 나면 리코더를 부르던 손녀딸의 리코더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게 분명하다. 문득 손녀의 리코더를 들었을 때 코에서 느껴지는 '침 냄새'를 맡으시고는 오늘 결심하신게 분명했다.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리코더를 만들어주시겠다는 다짐!
화장실 세면대에 몇 시간을 담가놓은 리코더를 들어봤다. 물기를 탁탁 털어 리코더의 입구에 코를 가까이 했더니, 익숙한 리스테린의 강렬한 향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 리코더는 작별인사를 해야할 것 같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버지의 손녀에 대한 사랑을,
딸은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낀 하루였기 때문이다.
갑자기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테이가 부릅니다.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
- grabhoh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