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계는 어디까지나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적인 관계임을 잊지 말자
(*언급된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힙니다.)
수연아, 서진이(아이)도 우리 준호(남편)도 훌륭하게 키워줘서 고맙다. 정성껏 챙겨준 선물(어머니, 아버지 선물과 함께 형님 뱃속에 아이 선물도 함께 보냈다.)도 고맙고, 덕분에 잘 지내고, 좋은 시간 보내고 왔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애썼으니 이제부터는 우리 수연이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렴. 늘 행복해라.
사실 큰 감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네?‘라며 잔잔한 감동을 받긴 했다. 지난 10년간의 분노와 서러움에 처음으로 약을 바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감동받았고 자주 연락드리겠다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래, 늘 고맙다.
세 바퀴가 훌륭하게 돌아가는 건 다 수연이 덕분이다.
형님한테 연락을 하고 바로 다음 날, 어머니로부터 카톡메시지를 받았다. 카톡의 내용을 읽고 처음에는 ‘갑자기?’라며 어리둥절했지만 지난 10년 나의 내조와 육아의 노고를 인정해 주시는 것처럼 느껴지긴 했다. 평생을 교사인 워킹맘으로 사신 분이라, 우리 아이가 걸음마하던 시절부터 어머니는 내게 "요즘 엄마들은 대학까지 나와놓고 왜 (일은 안 하고) 집에만 있느냐"며 나의 연약한 자존감에 상처를 내시곤 하셨다. 그랬던 어머니이기에 10년간 내가 했던 나름의 내조와 육아에 대해 인정해 주시는 말씀들이 놀랍긴 했다. 진심이든 아니든. 놀라울 뿐, 지난 10년간 어머니께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쉬이 잊히거나 마음속에서 놓아지진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아마도 상처가 깊어서 그런 것 같다. 오래된 상처들이기도 하고 상처받았던 말과 비슷한 말을 듣거나 상처받았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반복되면서 그 상처들이 또 건드려지고 아물 틈이 없었기에 쉬이 낫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의 타이밍이 매우 정치적이라고 생각이 들었기에 썩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타이밍이 아쉬운 게 시어머니가 육지로 돌아가신 건 지지난 주 토요일. 내가 형님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보내 서로 오해를 풀고 잘 지내기로 한 건 지난주 목요일, 어머니에게 메시지를 받은 건 바로 그다음 날인 지난주 금요일이다. 형님은 시어머니께 나에게서 이런 카톡이 왔다고 말을 했을 것이고 시어머니는 그 내용을 보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온 것으로 퍼즐은 쉬이 맞춰진다. 그렇게 나는 시어머니의 약점이자 복심은 우리 형님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아쉬운 점은 금요일이 아닌 수요일에, 내가 형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 어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면 더 진심으로 느꼈을 텐데. 씁쓸하고 아쉽다. 그래도 그런 메시지를 보내온 게 어디냐며 자위를 하지만 타임라인을 그려보자면 시어머니의 메시지는 내가 형님에게 먼저 손을 내며 화해를 청한 행동에 대해 보상 같은 정치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정치적이면 어때. 표면적으로라도 인정하고 인정받고 그렇고 그런 사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더 이상 찔리고 아프고 괴롭지만 않다면 괜찮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면 큰 발전이고 감동이긴 하다.
상대가 정치적이라면 나도 정치적이면 되는 것이다. 나도 어머니 자식에게 잘하고 어머니도 내 자식에게 잘해주시고 손자라며 끔찍하게 생각하시니 우리는 하나 주고 하나 받고 가 성립된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어머니의 말씀에 감동받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아예 없는 말은 아니지만 살짝 받은 감동을, 더 많이 받았다고 과장해서 표현했고 자주 연락하겠다는 빈말을 했다. 우리 사이가 꼭 가족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던 나와 시어머니는 이제는 가족이 될 수 없을뿐더러, 그렇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지난 10년이라는 세월에 기대어 배워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에 어디까지나 나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정치적인 관계 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한계를 깨달았다.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나니,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많은 일들과 감정들을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게 됐다. 나 또한 새로운 엄마와 아빠가 생겼다는 이유에서 친정엄마, 아빠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지난 과거의 잘못된 나의 생각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았다. 직면했으며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시어머니와 나는 똑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을 채우고자 했던 것이. 시어머니는 자신이 못했던 시아버지의 방랑 생활과 술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며느리가 나서서 고쳐줬으면 하며 바랐고 교육자라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딸의 이혼을 자신은 품지 못하지만 우리 부부, 특히 내가 그런 형님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품어주길 바랐다. 반면에 나는 시어머니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도 칭찬으로 감싸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고 진짜 잘한 건 더 부풀려서 남들 앞에서 칭찬받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우리는 서로에게 허상을 기대했다는 것을.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어머니의 딸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며느리는 딸이 아니지. 암암. 그렇고 말고. 10년 만에 만들어진 적당한 선을 지키며 서로 웃으며 볼 수 있는, 그런 정치적인 사이가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대하려고 했다가 지난 10년 너무 많이 아팠다. 나를 아프게 하면서까지 맺을 관계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가 나는 자신의 명예와 체면 때문에 더 이상 며느리에 집착하지 않고 나를 놓아주시는겠노라 이야기해 주시는 것처럼 들렸고 진짜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만날 일 없는 평행선의 거리를 찾은 후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또 언제 깨질지는 모르지만, 10년 동안 고군분투 해가며 얻어낸 거리인지라 쉬이 평화가 깨질 것 같진 않다. 그 거리는 바로 어머니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 거리다. 이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선명해지던 나의 상처들이 희미해지길 바랄 뿐이다.
이미지 출처: 행복웃음연구원 네이버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