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느슨해야 잘 자랄 수 있다
지난주 남편이 애써준 덕분에 나는 시댁 단톡방을 나왔다. 나온 직후에는 무언가 섭섭하면서도 시원하더니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아주 후련하고 머릿속이 정돈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매일 아침 기분이 상쾌하다. 단톡방 그게 뭐라고.
나는 시댁단톡방에 왜 그렇게 얽매였던 걸까 생각도 해보게 되고 한 발 떨어져서 시댁과 나의 문제를 보니 전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숨 좀 쉴 수 있게 되니 문제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는 모두 시댁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이상한 거라고 우겼다. 그전에는 수없이 다치고 깨진 내 마음에 가려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시누형님도 제대로 볼 수 없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그들을 만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면 무작정 도망부터 치고 싶은 생각만 들던 내가 이제는 달라졌다. 아직까지는 만나는 것이 기쁘거나 기다려지지는 않지만 최소한 도망은 안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든다. 시댁과 거리가 생기니 나에게도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처럼 그들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에 점점 여유가 생긴 건 확실하다. 무엇보다 나로 인해 자신의 뿌리를 꺾지 않아도 되는 남편을 대하기가 훨씬 편해졌고 단순해졌다. 전에는 시댁에 대한 나의 감정이 복잡하고 정신 산만하다 보니 남편을 대할 때도 마음 한편에는 무언가 걸린듯한 불편감이 들었다.
나는 어제 형님에게 연락을 했다. 형님을 싸고도는 어머니에게 상처를 받아 어머니와 형님을 한 통속으로 치부하고 미워하고 저주하고 싫어했다. 그러나 형님에 대한 감정은 직접적으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일종의 질투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정엄마는 겸손이 미덕임을 우리에게 단단히 가르치셨고 그렇게 실천하며 사셨다. 다른 어른들이나 친적들에게 오빠와 내가 학교에서 반장이 되었거나 (나 말고 우리 오빠) 그림을 잘 그려서 상을 타서 오면 마음껏 자랑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들이 알고 우리를 칭찬하면 아직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런 친정엄마와 정 반대인 시어머니가 (내가 볼 땐) 별 볼일 없는 형님의 일도 크게 포장해서 칭찬하고 자랑하시는 모습을 나의 일곱 살짜리 내면아이가 질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의 문제였다. 형님의 문제가 아니라. 시어머니는 정도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남편도 시어머니의 칭찬과 자랑의 정도가 심히 병적이라고 인정할 정도로 심하긴 하다.) 친정엄마는 칭찬과 인정에 과하게 인색하신 편이시고 시어머니는 칭찬과 인정을 매 순간 남발하시는 편이다. 극단의 어머니들을 대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나는 친정엄마와 정반대인 시어머니에게 내가 과하게 칭찬을 받거나 형님처럼 포장해서 자랑해 주셨더라면 내 안에 결핍된 인정욕구가 채워졌을까. 그럼 지금 어머니와 관계가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나의 그런 결핍이 그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을 사랑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해 보면 형님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어머니가 나와 형님을 비교하는 말들 때문에 나는 그녀의 존재만으로 염증을 느꼈을 뿐. 생각해 보면 늘 형님은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다. 다른 사촌 아가씨들을 챙기며 신부대기실에서 사진 찍은 나를 보며 먼저 와서 둘이 사진 찍자고 했던 것도 형님이었다. 실제로 내가 아이를 낳자마자 축하인사로 큰돈을 보내왔다. 고모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따뜻한 인사와 함께. 그리고 아이가 첫걸음마를 할 때 신었으면 한다며 신발과 옷들을 챙겨주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도 옷을 좋아하는 형님의 애정 어린 선물은 여전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형님을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형님을 미워할 수 있었던 건 시어머니의 공이 컸다고 본다.
임신소식을 시작으로 연락을 하게 된 형님께 사과도 드리고 그간의 이야기를 하고 풀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형님은 딱히 나에 대해 풀 게 없어 보이긴 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나는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형님 지난 일 꺼내서 죄송해요.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저는 몇 년 전 형님 혼자 저희 집에 오셨을 때 제가 공항 모셔다 드리면서 나눴던 이야기가 쉬이 잊히지 않아요. 지금은 역경을 잘 이겨내고 축복의 날만 기다리는 형님의 인생을 많이 응원해요.
그때 왜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까.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 싸웠느냐, 사이가 안 좋으냐고 물어볼 수 있었는데. (변명을 하자면 그때는 저도 제코가 석자라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지금과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더라도 형님이 혼자 외롭게 끙끙 앓았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직도 뭐랄까 아프기도 하고 후회가 많이 돼요. (오지랖이겠죠. ㅠㅠ) 아무에게 말 안 하고 큰일을 치른 형님이 저는 그저 씩씩한 줄 알았는데 결혼식 지나고 보니 형님도 여러 가지로 복잡하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안 그래도 복잡하신데 이해는 못 해 드릴 망정 저까지 짐을 더한 것 같아 죄송해요. 이제야 이야기해서 더 죄송하고요.
결혼하고 이 집안의 며느리로 사는 게 굉장히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결혼 전 형님이 써주신 편지처럼요..... 그중에서도 형님을 쉴드(? 안쳐도 나에게는 너무 멋진 형님이었는데) 치시느라 형님과 다른 처지에 있는 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시곤 했던 어머니 때문에 형님을 오해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어서 불편하게 느꼈던 건 사실이에요. 이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요.
사실 지난겨울에 제주 오셨을 때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서는 형님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는데 얼마 전 오셨을 때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저에게 형님한테 연락은 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때 알았어요. 제가 형님에 대해 불편하게 느끼는 건 형님이 아니라 어머니가 가운데서 껴 있어서 그렇다는 걸요. 어쨌든 형님 임신소식을 어머니를 통해 듣고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요.
앞으로는 형님께 직접 듣도록 노력하려고요. 제가 처음 아이 낳고 아줌마 돼서 예쁜 옷도 못 입고 화장도 못하고 아이 젖만 주는 젖소사람처럼 생각되어서 자존감이 낮아 있던 시절, 형님은 딩크족으로 너무 멋지고 세련되고 커리어우먼이어서 제가 더 친하게 못 지냈던 것 같아요. 제 자격지심 때문에요. ㅜㅜ 그럼에도 형님은 늘 우리 가족의 행복을 빌어주시고 아이 옷도, 신발도, 옥수수도 참 많이 챙겨주셨는데.. 제가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
이제 형님아기 태어나면 우리 아이에게 주었던 사랑 조금이나마 갚도록 노력할게요. 우리 육아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지내요. 우리 아이 어렸을 때 사진 보면 형님이랑 너무 닮아서 형님아기도 우리 아이처럼 예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아무쪼록 형님의 순산이 모두가 바라는 일이 되었으니 건강 꼭 챙기시고요. 저 무슨 일 없더라도 그냥 편하게 형님 뭐 하고 계신지 잘 계신지 아기는 잘 있는지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친구처럼 동생처럼 카톡 해도 되죠?^^
답장이 왔다. 지난날 치기 어린 나의 행동들을 다 이해한다며 따듯하게 받아주는 형님이었다. 그리고 형님은 자신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무슨 이야기를 어머니가 했는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다고 했다. 다만 이제 우리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냥 잘 지내면 좋을 것 같다는 게 형님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자존감 낮아 있던 시절에 그런 생각은 왜 한 거냐며 지금 다 키워놓은 내가 부럽다고까지 했다. 우리는 인생에서 이벤트의 시기가 달랐을 뿐이라며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해 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고까지 했다. 그렇다. 형님은 형님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형님에 대해 정말 많이 몰랐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형님의 이미지는 거의 허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제 나는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우애 있게 지내라고, 연락하라고 하든지 말든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형님 올케 사이가 된 지도 내년이면 10년이다. 지난 10년 동안 시작도 못했던 우리의 우정이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남편과 유전자가 가장 비슷한, 유일한 여자 사람과의 케미 말이다. 서로에게 느슨해야 함을 잊지 말자.
꼬이고 막혔던 관계를 풀고 뚫어버리고 나니 단톡방을 나왔을 때보다 더 후련하고 시원하고 마음이 편해진 건 사실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서 시댁식구들과의 관계들을 풀어가면 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용기가 더 샘솟았다. 마음속 한편이 썩어 들어가고 있던 곳을 다 드러내고 청소해 깔끔하게 정리한 느낌이 들었다. 점점 깨끗해지는 내 마음. 10년 묵은 감정을 정리하니 살랑이는 바람처럼 내 마음에도 가벼운 평온함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형님의 순산을 기원하게 된 나란 인간. 이런 나를 보며 참 쉬운 듯 어려운 여자라는 게 남편의 후기다. 그래도 남편은 큰 용기를 냈다며 고생했고 마음이 참 따듯하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이게 다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랑가 몰라. 다시는 남편의 뿌리를 스스로 꺽지 않도록 하겠다는 게 오늘 나의 다짐이다. 나의 사랑은 이렇게 한 뼘 성장했다. 느슨해진 시댁과의 관계로 인해.
이미지 출처: 내 작품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