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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Aug 20. 2024

형님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임신

그녀의 우여곡절이 나에게 미치는 작은 진동

남편의 누나인, 시누 형님은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번째 결혼식을 했다. 리마인드 웨딩이 아닌, 다른 사람과. 나는 이혼과 재혼이 좋다 나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누구나 겪는 우여곡절을 다른 형태로 겪어가는 그녀를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도 오는 작은 파장들을 감당할 뿐이다.


형님이 이혼소식을 알려온 것은 재작년 추석이었다. 시어머니는 남편에게 알렸고 나는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늘 여자들끼리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그렇게 강요하시고 들들 볶으시더니 이 문제에 있어서 나는 철저히 배제된 남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쁘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저 언행불일치 시어머니의 행동을 비아냥거리고 싶어지는 마음이 꿈틀거렸을 뿐이다.


형님의 이혼소식을 듣고 딱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2021년 1월. 형님 혼자 우리집에 와서 주무신 적이 있다.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혼자 오셨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아이가 어려 세 식구가 한덩어리처럼 다니던 시절이었기에 아이가 없는 부부는 저렇게도 다닐 수 있구나 하며 이해했다. 다음 날, 내가 형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렸다. 


형님은 창밖에 한강을 보며 "너희는 서울 살아서 좋겠다." 라고 했다.

"친정 옆이 더 좋으시지 않으세요?" (나는 그 때 아이를 키우며 친정 손길이 절실했다.)

"글쎄. 나는 서울에서 안 내려갔으면 오빠 안 만났을거야."

읭? 순간, 두분이 싸웠나 싶었다.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데, 뭔가 물어보는 게 실례일 것 같아 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안다한들,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그냥 넘어가길 바란 점도 있다.

"에이, 그래도 내려가셔서 직장도 잡으시고 좋은 점이 더 많잖아요. 형님, 어머니 아버지도 가까이에 계시고. 서울은 공기도 안좋고 살기 복잡하고 힘들고 그래요."

나는 아무말 대잔치를 하듯 이상한 말로 얼버무렸다.

"오늘 결혼하는 친구는 내 대학 동기 남잔데 혼자 운동센터 운영하는데 미국까지 가서 운동 배워오고 하니까 돈도 잘벌고 하더라. 나도 그 길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형님은 무언가 많이 복잡해보였다. 


그 때의 대화를 떠올려보니, 형님은 자신의 인생을 차근차근 되짚어보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형님의 이혼 소식을 듣고나서야 나는 머리를 띵 하고 맞은 것 같았다.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었을지 왜 그때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 머리속은 후회로 가득찼다. (오지랖인가)


형님은 이혼소식을 알린지 얼마 되지 않아, 재혼상대가 있음을 알려왔고 결혼의사를 밝혔다. 모두 놀랐고 시어머니는 강하게 반대를 하셨다. 이혼은 한 지 꽤 되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말을 못 꺼내고 있었고 이후에 좋은 상대를 만났다고 한다. 7년 여간의 결혼생활을 접고 나니 30대를 훌쩍 넘게 된 형님은 마음이 바빴다. 그렇게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재혼을 하고 봄에 아이를 임신했다. 예정일도 우리 아이와 비슷한 11월. 나는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에게 형님과 비교를 당하며 경제력도 별로인 여자 취급을 받았던 터라, 형님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축하하기는 커녕 불편할 줄 알았다. 그러나 형님과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고 나니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뉴페이스는 언제나 희망이고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님의 아이 덕분에 설레기도 하고 같은 달에 생일파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상상해본다. 


사실 나는 매 순간 시누형님과 비교해가며 나를 깎아내린 시어머니 때문에 형님도 미워하고 싫어했으며 멀리했다. 그럼에도 형님은 우리 아이를 정말 살뜰히도 챙겼다. 형님에게 고마운 점은 차고 넘쳤으나 매번 시어머니에게 비교 당하는 대상인지라 형님의 존재만으로도 상처가 쓰라렸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나는 점점 아팠다. 그래서 그녀를 오래도록 미워했다. 그러나 얼마전 남편이 결단을 내렸고 시댁단톡방을 나올 수 있게 되니, 자연스레 느슨해진 시댁과의 관계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은 형님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의 딸이라는 이유로, 매일 나를 깎아내리는 비교대상으로 쓰였을 뿐이었다. 형님은 나에게 상처를 준 적도 나를 괴롭게 한 적도 없었다. 나의 자격지심과 비교를 해서 사람을 깎아내리는 특유의 시어머니 화법이 합쳐져 괴로워하고 미워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친구들이 그런다. 


"옛말에 그런말 있잖아. 원래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넌 그랬을 뿐이야."

맞다.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여곡절 많았던 그녀의 앞날이 아이의 태명처럼 꽃길만 걷기를 바랄뿐이다.

 


이미지 출처: 이승진 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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