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걷는다.

퇴사자의 일상 회복기

by 그레이스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었다.

그 전에도 산책이야 수없이 많이 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걸쳐지지 않은 마음으로 걷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다.


늘 습관처럼 손에 쥐고 다니던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쉬는 날에도 혹시나 회사 연락을 놓칠까, 진동이 울리면 ‘무슨 일이지?’하고 마음이 덜컥했다.

사실 그렇게 긴박한 일로 연락 오는 일도 없었는데 왜 그리 유난이었는지 모르겠다.

무슨 큰 일을 한다고 내가 이러나 싶으면서도 휴대폰이 울리면 잡았던 아이의 손을 놓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던 기억 속의 내가 그새 낯설게 느껴진다.


이제 잘 울리지 않는 휴대폰을 깊숙이 넣어두고 거리를 걷는다.

느슨하게 풀어진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놓지 않는다. 여유로운 한낮의 폭삭한 기분을 한껏 느껴본다.


풀어진 마음은 나를 마냥 너그럽게 한다.

옆에서 쉴 새 없이 종알거리는 아이의 이야기가 짜증스럽지 않다.

서점에서 한참 동안 스티커를 구경하는 아이에게 빨리 가자고 채근하지 않는다.

잔뜩 날 서있던 나의 시선이 조금씩 둥글어진다.





퇴사 3주 차.

‘아직은’ 핑크빛 일상을 아주 잘 보내고 있다.

앞으로 나의 일상에서 매일 챙겨야 하는 식사, 쌓이는 빨래, 돌아서면 지저분해지는 청소와 정리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모든 것이 서툴고 힘들겠지만 잘해보고 싶다.


확인할 메일함도, 연락도 없이 풀어진 마음으로 살아갈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어떤 마음으로 퇴사를 결정했든 잘한 것이라고. 이유를 불문하고 옳은 결정을 했으니 후회하지 말라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해왔으니 앞으로는 더 잘할 것이라고 말이다.


이 응원이 혹시라도 나처럼 퇴사를 했거나, 앞두고 있는 워킹맘 또는 그 누군가에게 닿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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