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옆자리에서

2025

by 그레이스

1. 요즘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 마음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아이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내 감정도 함께 널뛰기를 시작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이렇게 극도로 산만해졌는지, 놀 궁리만 하게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2. 우리 집은 거실에 책상이 있어 아이와 나란히 앉아 공부하고 일하는 구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아이를 보기만 해도 하나하나 잔소리를 하게 돼, 자체 분리조치를 시작했다. 아이가 거실에 있으면 나는 책을 챙겨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구부정하게 앉아있든, 숙제하다 말고 책상을 따닥 거리며 그놈에 ASMR을 하든, 갑자기 아이돌 포카를 만지작거리든... 아무튼 안 보는 게 상책이다.


3. 아마도 사춘기는 아이의 인생에 가장 이기적인 시절이 아닐까. 본인은 무조건 이해받아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다. 참을 인자를 새기고 또 새기다가도, 나 역시 경계를 넘고 만다.


4. 다른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지키겠다고 한 약속을 그냥 지키라는 건데 미적미적 꾸물거린다. 참다 참다 "왜 안 하니?"라고 (부들부들 떨리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는 나에게 잔뜩 찌푸린 얼굴로 좋게 얘기하란다. 아무리 자아를 찾아가는 시기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5. 내가 좀 무던하고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 싶다. 마음이 넓고 넓어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냥 넉넉히 웃으며 아이를 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의 나는 자잘한 짜증도 많고 특히 규칙과 시간에 예민한 편이라 모든 것이 허술해지는 아이의 사춘기가 유난히 더 버겁다. 여유롭게, 흘러가는 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인데도 자식 앞에선 한없이 옹졸해진다. 간장종지처럼 마냥 작아진 마음이 또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6. 믿고 싶다. 아이가 지금, 내 눈에 차지 않아도 아이는 잘 살아갈 거라는 것을. 그 아이의 방식대로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사실 믿는다. 그런데 그 믿음에 불안함이 자꾸 끼얹어진다. 지금 이걸 고쳐주지 않으면 나처럼 게을러질 거야. 아무것도 못 끝내는 애가 될 거야.라고 자꾸만 불안감이 엄습한다.


7. 그러나 분명한 건 엄마가 된 이상 나는, 한평생 아이의 편으로 살 운명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평생을 '삐비빅' 도어록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얼굴에 안도하며 살 운명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겪고 또 겪어야 하나보다.


8. 여전히 자는 아이의 얼굴이 제일 이쁘다. 언제 이렇게 컸지. 자는 아이의 손도 만지고 발도 만져본다. 아직도 보들보들, 아이의 손은 어리다. 불퉁거리고 눈을 희번덕거려도, 그 손은 아직도 말캉하다.


9. 결론은 하나다. 불안함을 믿음으로 덮어버리는 수밖에. 서로를 질리게 하는 잔소리 대신 '넌 잘 살 거야. 엄마는 걱정이 없다. 언제나 네 편이다'라고 속삭여 주는 것뿐. 사랑만 퍼부어도 모자란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뿐. 그러니까, 그냥 우리 다 같이 잘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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