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라는 표현을 함부로 쓰는 것을 경계하지만 나는 시간에 있어서 만큼은 빈곤층임이 확실하다. 그것도 제법 오랫동안 그랬다. 그렇다고 충분한 돈이 쌓인 것도 아니다. 시간에 쫓겨 살게 된 건 순전히 효율적이지 못한 관리 미숙으로 엉터리 습관이 자리 잡아버린 탓이다.
아침에는 능률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할 일을 오후나 저녁, 더러는 새벽으로 미루기 일쑤였고, 기억력이 나쁘다는 이유로 '벼락치기, 초치기 공부'를 합리화했다. "오늘 할 일은 될 수 있는 한 미루고 보자"며 차곡차곡
쌓인 내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 가난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그래서이지만, 주변에서는 나를 '항상 바쁜 사람'으로 여긴다.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걸어 올 때면 어김없이 '바쁘(시)겠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인다. '제가 게을러서요'라고 몇 번쯤 말해 보았지만,
그들은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았고 나 또한 더는 해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모를 거다.
'여전히 바쁘구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무능감이 찌릿찌릿 자극된다는 것을!
조심스러움과 미안함을 반쯤 섞어 나를 찾을 때마다 내가 더 미안해진다는 것을 말이다.
갑작스러운 여행은 '오늘 하루가 내 삶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끔찍했기 때문이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이라고 믿었던 건 착각이었고, 나중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으로 미뤘던 건 그저 습관이었을 뿐이라는 자각이 들자 일상을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이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고성 바다는 한산했고 평화로웠고 깊었다. 우리는 새벽 바다를 걸었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아침도 먹었다. 쉼 없이 음식과 풍경과 바람으로 허기를 채웠다.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몰라서,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작정하고 낸 시간이 아까워서... 소화하지 못하면서도 쏟아 넣기에 바빴다.
한풀이하듯 강원도 고성을 빠져나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좀 심했지?"
어렵게 얻은 기회를 우습게 날려버린 것 같아서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모든 게 좋았어서, 좋은 게 너무 많았어서 좋은 것만 고르다 보니 넘쳤고 과했다.
결국 2년 만의 휴가는 '졸부 코스프레'로 후지게 끝났다. 시간 빈곤층인 내 한계였다.
집으로 오는 길, 서울 야경을 보며 생각했다.
'미련스러워지기 전에 미루지 말아야 겠어'
내년 이맘때에는 시간 빈곤층에서 벗어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