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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묻는 사람 K Jul 22. 2021

당신이 그립습니다.

 싫지 않았다.

유난히 땀 많고 더위 견디기를 힘들어했지만, 가을보다 덜 좋았을 뿐이지 여름이 싫었던 건 아니다.

푹푹 찌는 날에는 수시로 정신줄 놓고 헐렁하게 지냈지만, 여름이니까 괜찮다고 다독였다.

출근조차 기다려졌다. 집보다 시원한 지하철과 사무실에 있으면, '아, 이곳이 천국인가!' 싶기도 했으니까.


 내 삶을 뒤흔든 몇 가지 사건이 더위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슬프다고만 하긴 모자라고, 답답하다고만 하긴 부족하고, 화난다고 하기에도 충분하지 않아서,

 여태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 그냥 '여름이 싫다.'라고만 한다.

입 밖으로 뱉어내니 정말 싫어졌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3년 전 오늘도 더웠을 것이다.

7월 23일 아침부터 더위와 씨름하며 출근 준비를 했으니 그 전날도 그랬을 것이다.

남편이 호들갑스럽게 비보를 전했지만, 믿어지지 않아서 믿고 싶지 않아서 연신 포털사이트를 확인했다.

'하필, 이렇게 더울 때'라는 생각이 든 건, 이 무더위 속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한낱 더위를 투정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속이 울렁거려서 몇 번을 쉬어가며 지하철을 향해 걸었다.

어쩌면 그도 밟았을 길을 따라 걸으려니 마음이 산란했다.

몰려있던 사람과 방송국 차량은 빠져나간 뒤였고, 언론사 차량 몇 대와 어슬렁거리는 몇몇만 남아있었다.


 종편 차량이 혐오스럽게 찻길에 서있는 걸 보고서야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온갖 기사가 쏟아졌다. 한 인간의 삶이 난폭하게 요약되는 것을 보았다.

폭력적으로 정리되고, 희화되는 것도 보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사진도 실려있었다.

그 밑에는 배설물 같은 댓글이 하나 둘 늘어났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러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나라 언론 매체는 추잡하고 추악했다.

당신들이 감히 그의 삶을 말할 자격이 있나. 여름이 싫어진 만큼 언론 혐오가 심해졌다.

 지긋지긋하다.  


 멋있었고, 품위 있었고, 유머 있었고, 그래서 희망과 기대를 품었더랬다.

다시는 그런 정치인이 나올 수 없을 걸 안다.

여전히 나는, 나라에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만약에'하면서 그분을 소환한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한때 지지했으나 끝없이 추락하는 정의당을 보면서 차라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고 위안을 얻지만,

여전히 여름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내일이면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지 3년째 되는 날이다.

어제는 김경수 경남 지사에게 징역 2년을 확정 짓는 판결이 있었다.

망나니 칼 춤추듯 발악하는 이들을 보고 있자니, 더위가 더욱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몹시,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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