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인사, 사랑해 1

취향존중

by 그레이스



그녀는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 말의 무게를 그녀가 온전히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모방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이 내게 닿은 방식만큼은 분명했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말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만이 또렷이 남았다



늦은 저녁, 사람들의 소음이 사라진 수영장 탈의실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의 끝자락, 그곳은 한낮의 열기를 식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작은 정거장 같았다.

나는 수영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평온한 순간을 느긋하게 누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등 뒤에서, 갑작스러운 목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가르며 들려왔다.


“사랑해! 나 내일 생일이야.”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췄고, 마치 시간이 잠깐 멈춘 듯한 착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보니, 스무 살 남짓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방금 샤워를 마친 듯 머리에 수건을 감고 있었고, 젖은 뺨 위로 수줍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흰 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모습은 소박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투명한 진심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수영장에서 몇 번 마주친,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사랑해. 나 내일 생일이야.”


그 말은 마치 대단한 고백이 아니었다.

그저 오늘의 마음을 가볍게 꺼내 보이는 인사처럼 느껴졌다. 계산도, 의도도 없어 보이는 말투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짧은 응답에도 그녀는 안도한 듯 웃더니, 곧 어머니로 보이는 이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자리에 조금 더 머물렀다.

‘사랑해 ‘라는 한마디에 마음 한편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 말은 여름밤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어깨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고백은 어떤 관계도 전제하지 않은, 오직 순간 속에서 건네진 사랑이었다.

우리는 ‘사랑해‘라는 말을 때로는 지나치게 특별하게 혹은 무겁게 여기지만,

그녀의 말처럼, 그저 지금 이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꺼낸 말일 수도 있다.


그녀는 ‘사랑해’와 ’생일이야’를 함께 건넸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은 참 단순하고도 분명했다.

내일을 기다리는 설렘,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기대,

그리고 아무 조건 없이 건네는 따뜻함.


그녀의 고백은 짧았지만, 오랫동안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았다.

운동을 하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


사랑은 어쩌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순간 속에서도

조용히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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