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세계에, 조심스레 들어가는 법
수영장 물에 들어 있는 염소 성분이 내게는 꽤 강한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이어지던 재채기와 콧물로 병원을 찾게 되었고, 나는 단순한 감기겠거니 생각했지만 의사는 알레르기성 비염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날 처방받은 약은 마치 수면제처럼 나를 눌렀고, 그 이후 며칠 동안은 희미하고 둔탁한 시간 속을 떠다니듯 지냈다. 귀도, 눈도, 감정도 전부 반쯤 잠긴 듯한 상태였던 그 며칠 사이, 문득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수영장 풍경 속, 그녀의 밝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며칠 뒤 다시 수영장을 찾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샤워실 근처에서, 예전처럼 맑고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사랑해! 나 내일 생일이야!” 그녀의 인사는 아무렇지 않게 웃음을 담고 있었고, 나 역시 무심결에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어디선가 조용한 파문 하나가 일렁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그녀는 늘 같은 목소리로 같은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별 의심 없이 그 말을 믿었다. ‘정말 내일이 생일이구나’ 하고 생각하며, 속으로 조용히 축하했고, 순간의 애정을 담담히 그녀에게 건네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인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여러 날에 걸쳐, 똑같은 말을 했고, 나는 그제야 조금씩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만 그 감정은 명확한 혼란이라기보다는, 마음 한구석을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헛헛함에 가까웠다. 나는 과연 무엇을 믿고 감정을 실었던 걸까. 매일이 생일이라면, 그 말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게 아닐까. 나는 그 말이 가볍게 느껴지기를 바랐다기보다, 어쩌면 그 말을 듣고 흔들리는 내 마음이 조금 덜 요동치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헛헛함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어쩌면 나는 내 안에 어떤 기준을 세워두고 그녀의 인사를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 일반적인 방식,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 그런 이름으로 정리된 틀 속에서 그녀를 해석하려 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그 헛헛함은 그녀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해놓은 ‘보통’, ‘일반적’이라는 관점이 불러온 감정이었다.
해석은 이해의 다른 얼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일방적인 단정이 되기도 한다. 그녀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녀의 개인적인 사정을 들은 적도 없고, 사실 솔직히 말해 알려고 한 적도 없다. 다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그녀의 말투와 걸음걸이, 인사하는 방식에 조금씩, 그리고 조심스럽게 적응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수영장을 누비는 그녀는 여전히 같은 인사를 반복한다. 누군가는 엄마처럼, 누군가는 언니처럼 그녀의 말에 웃으며 응답한다. 어쩌면 그녀의 인사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꾸준한 반복은,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는 뜻밖의 위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종종 정상(Normal)이라는 이름 아래 세상을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그 단어에는 언제나 조심스러움이 필요하다. ‘정상’이란 말은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거나 느끼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지만, 그 ‘대부분’이라는 수치가 진리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다름을 이상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결국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무지이기도 하다.
진짜 존중은 완전한 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와, 설명이 없어도 옆에 있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그 마음의 언저리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이름 모를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혹시 정말 네 생일이 그 수많은 인사 중 하루였더라도, 그날만큼은 누군가의 진심이 조용히 너를 스쳐 지나가지 않았기를.
그리고 그 사랑이, 단 하루만의 것이 아니었기를.
나는 조용히, 그 마음을 너에게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