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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았다

흔적

by 그레이스



오래전 마음속에 그려둔 얼굴, 수없이 되새긴 그 미소가 눈앞에 겹겹이 쌓였다. 그러나 한 걸음 다가설 용기는 이미 작은 불씨처럼 꺼져가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거리를 좁힐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 믿음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린 모래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멀리서 너를 보는 순간, 묻어두었던 통증이 조용히 되살아났다. 우리의 기억을 체에 걸러 좋은 것만 남겼다고 믿었던 마음과, 다시 마주할 수 있으리라는 용기마저 함께 흩어졌다. 심장은 잊지 않는 기관처럼, 그때의 떨림과 그 후의 상처를 동시에 끄집어내며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선 속에는 가까움보다 멀어짐의 예감이 더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 예감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번져왔다. 미운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아팠던 날들을 다시 걷고 싶지 않은 본능이 나를 잡아 두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처럼, 우리는 말없이 서 있었다. 침묵 속에서만 서로의 거리를 계산했고, 가깝지도, 완전히 멀지도 않은, 그러나 분명히 물러서는 걸음을 주고받았다. 그것이 우리가 택한 마지막, 가장 조용한 대화였다.


멀리서 바라본 너의 모습 속에서, 나는 내 마음을 처음으로 고요히 인정했다. 놓아야 함을, 다가설 수 없음을, 그럼에도 쉬이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위로가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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