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에서 배운 존중
가을날 햇살이 가장 온화한 얼굴을 내보일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하늘은 맑은 유리창처럼 투명했고, 바람은 낙엽을 조심스레 흔들며 바닥 위에 한 장 두 장 흘려보내고 있었다. 나는 벤치에 앉아, 유모차에서 막 내려 걸음을 떼는 내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 살쯤 되었을까. 유모차에서 내린 아이는 호기심 많은 발로 낙엽 위를 아장아장 걸으며 세상을 탐색하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낙엽의 부드러운 촉감은 아이의 작은 세계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잠시 후, 아이는 바닥에서 꼼지락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더니 발을 쿵쿵 내리찍었다. 눈을 따라가니 개미였다. 좁은 길 위를 부지런히 오가던 작은 곤충. 아이는 장난처럼 그 길 위에 발을 내딛거나 막아 세우고 있었다.
나는 아이 곁에 나란히 앉아, 오가는 개미를 함께 바라보며 오래전 읽어 주었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아가야, 죄 없는 미물을 괜히 죽이는 게 아니란다. 그것들도 집에서 식구들이 기다릴 텐데.”
(박완서, 동화 <엄마 아빠 기다리신다> 중)
나는 그 말을 빌려 아이에게 조용히 다시 들려주었다.
“저 개미도 집이 있단다. 집에는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런데 네가 밟거나 길을 막으면, 개미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길을 잃고 말 거야. 남겨진 가족은 끝내 기다리다, 돌아오지 못한 그 개미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겠지. 개미의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마음 아플지 생각해 보렴.”
아이의 눈빛이 순간 흔들리며 발끝의 장난스러운 힘도 함께 빠져나갔다. 개미가 다시 길을 찾아 기어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아이는 더 이상 길을 가로막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이는 개미를 밟지 않았다. 작은 몸을 밟는 일이 곧 어떤 일을 부른다는 것을 그 나이에 다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의 말은 아이 마음속에 스며들었고, 그만큼 발걸음은 조용히 달라졌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작은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곧 사랑을 배우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아이가 몸으로 익힌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개미의 집을 상상하는 일은 곧 가족의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내 마음에는 여전히 그 가을의 장면이 선명하다. 한 아이의 발끝에서 시작된 작은 깨달음이,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우리는 때로 기억보다 더 오래가는 메시지를 남긴다. 작은 생명 하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결국 사랑을 배운 기억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낙엽이 바람에 실려 흩어지던 그 가을날, 나는 아이의 눈 속에서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깊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게,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