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still struggling

2000년, 유학생 첫 학기 가장 힘든 시기였다.

by 서재진

첫 학기, 유학생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내게도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처음 해보는 외국 생활도 그랬고 지도교수와 연구비 (Fund)를 찾는 일은 더더욱 힘이 들었다. Flavor Chemistry를 하고 싶었고, 그 분야의 대가인 Terry E. Acree와 Interview를 했고, fund 얘기는 분명히 말하진 않았지만 외국인 학생인 나를 받아줄 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지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 분과 일을 같이 하려면 Ithaca에서 1 시간 반 가량 떨어진 Geneva campus를 가야 하는데 문제는 Geneva에 한인교회가 없어서 평생을 두고 하나님께 맹세한 새벽기도회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새벽기도회를 할 수 있는 이타카에 한해서 교수를 찾기로 결심을 했다. 내 관심 분야와 그중 제일 가깝고 게다가 중학교 때부터 노래를 했던 수학과 관련이 많이 있는 통계를 다루는 Harry Lawless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정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마침 Harry Lawless 가 임시 지도교수님이셔서 그간 어려운 일을 많이 상담했던 터라 안심하며 다시 찾아갔다.


“Would you be my advisor?”


“No~!”


미리 대답을 준비해 두었다는 듯이 1 초도 안되어서 단호하게 Harry Lawless 가 대답했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The first, you did not very well at the mid-term exam. The second is you are still struggling. I want to work with excellent students. Any other question?”


“No…”


미국 와서 생전 처음 치르는 시험이니 이번에 잘 못 보았어도 다음에 잘 보라고 격려를 해주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그래, 시험을 못본건 내 잘못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끊임없이 뭔가가 끓어올랐다.


‘당신이 나를 어떻게 안다고 이렇게 쉽게 날 판단해…’


첫 학기 힘든 일 있으면 다 말하라고 해서 나는 한국에서 교수님을 대했듯이 수업 시간에 잘 못 알아 들었던 거 실수했던 거 다 말하고 상담했는데 그걸 내 약점으로 다 기억하고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내 앞에서 Nice 한 척하며 웃었던 그 모든 것들이 배신처럼 느껴졌다. Harry Lawless와 Interview 가 있은 뒤 Mann Library에서 한국 선배님들과 생물통계 Group study 가 있었는데, 서럽도록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어느 날 왜 이리 춥던지. 어깨를 움츠리고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stocking Hall에서 Mann Library까지 걸어서 5 분 정도 되는 거리를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걸어갈 수가 없었다. 한 걸음 걷고 흐르는 눈물을 꾹 참고 다시 걸었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크게 떴다. 감으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아서 먼 산을 올려다보았다.


선배님들이 다 모이셨는데, 드디어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저 Purdue로 transfer 할래요. 거기서 저, 1년간 TA(강의 조교 장학금) 하구 RA(연구조교장학금) 다 준다고 했는데, 저 거기로 갈 거예요… 이번 겨울에 재입학 수속 밟고 봄학기 한국에 가 있다가 내년 가을에 Purdue로 갈 거예요…Purdue로 갔어야 했는데…”


닭똥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뚝뚝뚝 흘러내렸다. 장학금 없이 입학을 허가한다는 Cornell 서류를 받고 한편으로는 너무 좋았지만 여러 가지 집안경제 사정,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환율, IMF 모든 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Fund를 놓고 기도하던 중에 Purdue에서 두 명의 교수가 각각 나를 TA, RA로 뽑아서 1 년동안 등록금 면제에 생활비까지 주는 장학금을 준다는 소식을 받았다.


혹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아닐까 하며 혼돈스러웠다. 새벽을 달리며 울며 기도했던 학교는 Cornell 하나였는데... 갑자기 돈을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Cornell 은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바로 새벽기도를 할 수 있는 코넬한인교회도 인터넷으로 찾았지만 Purdue는 교회 인터넷 사이트 하나 찾지 못했다. 돈보다도 기도에 합한 곳 Cornell로 가자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고 부모님께는 만약에 다음 학기 fund를 못 찾으면 Purdue로 전학을 가든지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한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만 보조해 달라고 말씀드렸다.


‘하나님, 제가 오고 싶어 온 코넬이지만 너무 힘이 들어요. 정말 너무 수치스러워요. 한 학기만이라도 다녔으면 하는 소원으로 이곳에 왔지만 하나님 저, 한 학기 더 다니고 싶어요. 제 꿈이 너무 큰 건가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제게서 긍휼을 거두지 말아 주세요… 하나님…’


한 달간 집에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언니에게만 멜을 보냈다. 언니가 식구들에게 알렸고 드디어 엄마랑 전화 통화를 했다.


“아가, 엄마는 네가 그렇게 힘들다면 석사딸 박사딸 아니어도 괜찮다. 너~모 너~모 힘들면 그냥 한국으로 돌아오니라. 생각 같아선 그곳에 가서 널 데려오고 싶구나… 그리고, 아가, 힘든 일 있으면 엄마한테 다 말하거라. 그리고, 돈 걱정 하지 말아... 내, 집을 팔아서라도 우리 막둥이 뒷바라지할 수 있다. 엄마 아직 능력 있어…”


국제 전화로 우는 소리가 엄마께 들릴까 봐 숨죽이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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