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핏줄이기 때문에

그래요, 전 밥만 많이 먹고 시간만 축내는 돌이에요!

by 서재진

금요일 아침 새벽예배 마치고 오전 8시 시작하는 유기화학 수업 들으러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축구경기 있는데, 명색의 한국인이라면서 월드컵 주최국가로서 50여 년 한이 되는 16강 진출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를 한 번도 못 봤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하나, 청강이긴 해도 나에게 가장 약점이 되어 목 졸라매고, 발목 쥐고 더 이상 내 전공 분야에 있어서 앞으로 못 가게 하는 유기화학 수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번 여름 잘해두어야 가을 학기에 본격적으로 수업 들을 때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벌써 이번이 몇 번째 시도란 말인가?


학부 때 학점이 가장 안 좋았던 과목이어서 담당교수님이 따로 호출하셔서 하시는 말씀이


"자네는 말이야, 맨 앞줄에 앉아서 한번도 결석, 지각도 안 하고, 내가 보기엔 졸지도 않고 굉장히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 같은데, 뭐가 문젠가?"


차라리,


"자넨, 머리가 좋은데 노력이 부족해"


라고 꾸짖는 것이 내겐 훨씬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노력은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왜 안 좋은가? "라는 말엔 난 솔직히 답을 할 수가 없을 만큼 비참해지기 때문에.


"그래요, 전 돌이에요. 밥만 많이 먹고 시간만 축내는 돌이에요."


라고 나 스스로 자학하기 때문이다. 암튼, 그런 우여곡절을 내게 가져다준 유기화학 수업은 8시에 시작해서 9시경에 한 10 분 정도 휴식 시간을 갖고 다시 50 분 수업을 한 뒤 10시에 끝난다. 휴식 시간에 노트 필기를 다시 보고 있는데 같이 수업을 듣는 학부 동생 성호가 핸드폰 들고 내게로 왔다. 지금 친구들이 계속 축구 경기를 메시지로 보내오는데 한국이 1:0으로 포르투갈을 이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난히 16 강 진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쁨에 넘치는 예견과 함께.


수업을 마치고, 잠시 교수님 방에 들러 일거리 받아 온 뒤 곧장 집으로 와서 가락국수를 끊여 먹으면서 인터넷으로 축구에 관한 기사와 사진을 보았다.


갑자기 목이 메고, 울컥 눈물이 나왔다.


이제까지 내 나라 한국에 대해서 이렇게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막상 미국에 와보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행여 아는 사람은 북한 얘기를 꺼내 서로를 난처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붉은 악마 인파들, 얼굴에 태극기모양으로 페인트 칠을 하고 손에는 국기를 흔드는 내 나라 내 동포들. 우리가 이렇게 하나가 되어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것이 내겐 광복 이후 거의 처음인 것 같다. 항상 우리나라는 서러움에 눈물을 흘렸건만, 이번에 흘리는 눈물은 본질적으로 다른 눈물이다. 기쁨과 감격과 자랑스러움에 범벅이 되어서 흘러내리는, 한 핏줄만이 공유할 수 있는 피눈물인 것이다.


내일 주일이면 이타카를 떠나시는 분들이 계시다. 이미 떠난 분들도 계시다. 한 분 한 분이 떠나시는 분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릴 때마다 난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곤 한다. 그분들께 받은 은혜가 너무 많은데. 다 갚지도 못했는데. 힘들 때 따로 불러서 손수 파스타를 요리해 주고 같이 TV 도 보고 영화도 한편 보고, 언니랑 드라이브도 하고. 쇼핑하러 이타카 구석구석 언니랑 같이 다녔는데, 그렇게 주님 안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옆집 은정 언니는 멀리 산호세로 남편 되시는 정원석 형제님을 따라 지난주 가셨다. 그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기에 언니 뱃속의 아기 순산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이번 주도 가시는 분들 한 분 한 분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목이 메어 올 것 같다.


우린 주님의 피로 엮어진 한 핏줄이기 때문에.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