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찌르르'하자!

2006년 11월 24일 첫 만남을 기억하며

by 서재진

지난밤 L.A. 총각과 메신저를 하면서 들었던 말이 내 귓가에서 떠나질 않는다.


“네가 내 배우자 이상형이야…”


꿈인가 생시인가? 머리 털나고 처음 듣는 내가 '이상형'이라는 말과, 그것도 배우자 이상형이라니! 새벽 예배 목사님 설교 후, 개인 기도 시간을 갖는데, 갑자기 밑에서부터 뜨끈한 무엇인가가 올라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33년 차 짝사랑 아이콘인 내가 드디어 짝을 만난 것인가!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한 20여분 그렇게 울고 나서 드린 기도의 첫마디가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


감정을 추스르고 예배당을 나오니, 어느새 붉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앞으로 새로운 인생이 찬란하게 열릴 것임을 전조로 알리 듯.


일은 급 물살을 타고, L.A. 총각은 내가 있는 뉴욕 Ithaca 시골 마을로 일주일 휴가를 내서 방문하기로 했다.


오늘은 L.A. 총각이 나를 보러 이타카로 오는 날이다. 근처라는 연락이 왔었는데 오매불망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다. 10분이면 올 거리인데, 1시간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다. 필시, L.A. 대도시에 살던 이 형제는 산골짜기 시골 동네 굽이굽이 산길 속에서 길을 잃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남자의 자존심에 생채기가 날 새라 나에게 전화해 길을 묻지 않는구나! 내가 살던 아파트는 Highland Road 길가에 있었다. 한 시간 넘게 헤매다 드디어 우리 집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정말 Highland 더라고..."


이를 어쩐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비밀 방명록에는 '첫 만남은 와락 안길까요? 아님, 오빠~ 하고 달려갈까요?' 하고 온갖 간지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을 했다만, 서른셋, 서른넷 노처녀 노총각이 직접 대면을 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만 보러 일주일씩이나 휴가를 내서 이곳에 온다고 하기엔 쑥스러웠던지,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어머님을 모시고 내가 있는 곳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동생 보는 길에 나도 보러 온다 했다.


자동차 마니아인 동생이 여러 대 소유한 자동차 중 하나를 빌려서 이곳으로 운전해서 온다고 하기에 내심 기대를 많이 했다.


“Pretty Woman”에서 리처드 기어처럼 꽃다발을 들고, 근사한 차에서 내릴 L.A. 총각의 모습을 한껏 마음속으로 그려 보았는데, 현실은 매혹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짧으셨다. 은행에 다닌다고 하셨는데, 난 정말이지 헤어 젤로 절도 있게 나눈 2:8 가르마를 보고 은행장님이 오신 줄 알았다! 이제는 유행이 다 지난 디스코 청바지를 입고, 근처 웨그만 슈퍼에서 산 가격표 $6.99 도 떼지 않은 꽃 한 다발을 들고 있었다.


“오 주여, 내가 연락했던 형제가 맞습니까?, 이 형제를 제가 계속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막상 대면을 하니, 비밀방명록에서 살갑고 애교 넘치는 나는 온데간데없고, 어색함에 초점을 잃고 입가만 바르르 떠는 노처녀가 서 있을 뿐이었다.


어색함을 뒤로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와락 껴안을 수도, 안길 수도 있다 했던 나와 그는 악수를 하려던 손을 뒷짐으로 감추고 어중간히 목례만 했다. 그리고, 어정쩡한 자세로 안겨주는 꽃다발을 받았다.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프라인으로 처음 대면한 남녀가 첫 식사를 하고, 나는 간략하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러 교정을 걸었다. 20년 동안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하필이면 그날따라 진눈깨비에 혹한까지 덮쳐서 엄청 추웠다.


하지만, L.A. 총각은 한참 교정 중인 기찻길 치아를 ‘달달달’ 부딪혀 가며 이를 악물고 하나도 안 춥다고 하신다.


학교 전체를 볼 수 있는 Johnson Museum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차를 시켜 마시던 중 내가


"정말 꿈만 같아요. 서로 연락만 하다 끝날 수도 있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제 기대가 부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고 있었거든요."


라고 말을 하자마자, L.A. 총각이 갑자기 내 손을 와락 잡으면서,


“그래서, 내가 왔잖아.”


한다. ‘하나님, 첫 키스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죽기 전에 좋아하는 사람 손잡고 좋아서 ‘덜덜덜’ 떨다 죽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 했었는데, 지금 기도 응답하셔서 데려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놀란 토끼 눈으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말을 이어갔다.


“저기요, 방금 전에 제 손을 잡으셨을 때 저, 감전되어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찌르르”하고 전기가 온몸을 타고 올라왔거든요…”


서로 얼굴을 붉히며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새벽 예배를 마치고 아침을 먹은 뒤 학교 주변을 산책하려고 하는데, L.A. 총각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을 건넨다.


“우리, ‘찌르르’하자”


이 분은 필시 다른 별에서 온 된장찌개 버전 ‘어린 왕자’ 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린 왕자와 결혼하겠다는 내 배우자 기도가 이렇게 응답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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