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찌르르”하자는 말에, 20대 초반의 풋풋한 젊은이들로 가득한 대학캠퍼스에서 30 중반을 달리는 우리는 어색해하며 수줍은 듯 두 손을 내밀었다. 차마 손깍지는 못하고 마주 잡은 손 사이로 삶은 달걀 하나가 넉넉히 들어갈 것 같은 공기층을 형성하며 엉성하게 손끝만 겨우 부여잡은 채 숲으로 우거진 이타카 시골길을 산책했다.
그러자, L.A. 총각이 불쑥 말을 꺼내기를,
“나, 사실 고백할 게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닌가~!
이 분 겉보기와는 다르게 저돌적이고 진취적인 면이 있으시네. 아니, 11월 말 추수 감사절이라 날도 춥고, 땅도 서리가 내린 듯한데, 무릎이라도 꿇고 프러포즈를 하시면 감기 걸리실 텐데, 어머어머 이를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웅변으로 다져진 목청은 온 데 간 데 없고, 개미구멍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이며 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뭔데요…”
“나, 사실은 대학교 2학년 때 고스톱 쳤어.”
이럴 수가! 고해성사대신 나의 뇌를 시원하게 해주는 도발적인 멘트에 난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다른 별에서 오신 L.A. 총각버전 어린 왕자님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신앙고백까지 서슴지 않으신다.
“그땐, 예수님을 몰랐을 때였어~!”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난감 그 자체였다.
진눈깨비가 내리는 가을 끝자락의 어느 날, 우린 그렇게 지구와 다른 별을 오가는, 그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대화를 이어갔다.
새벽예배부터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더니 오후 즈음에 나른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소파에 기대어 쉬는데, 어린 왕자님이 또 고백을 하시겠다고 한다.
“나, 사실은…”
“네, 또 뭔데요…”
“엄청 코 골아…”
“아, 네…”
내 기대를 뛰어넘는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난감 시추에이션의 연속이지만 참으로 신비로운 주님의 피조물이란 확신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잠시 소파에 기댔을 뿐인데, 정말 5초도 안 지나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알람을 맞춰놓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다. 고단했던지 입냄새가 났다.
사랑하는 것과 입냄새는 별개인 줄 알았는데, 사랑한다 하더라도 가까이 가면 입냄새가 날 수도 있구나를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혼잣말로, ‘아, 입냄새..’라고 한 것 같은데, L.A. 총각이 들으신 것 같다. 갑자기 얼굴이 심각해지면서 하는 말,
“다, 박테리아 때문이야!”
그래도 내가 명색이 식품영양학과 출신, 대한민국 공인 영양사인데 뭐라도 직접 요리를 해서 대접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장을 보러 함께 나갔다.
‘무늬만’ 대한민국 공인 영양사인 나는 ‘짜파게티’라면을 끓여드렸다!
기대에 못 미치는 요리일지언정 맛있게 먹고, 내가 한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미국에서는 원래 남자가 설거지해.”
라며 설거지와 뒷정리까지 해주는 L.A. 총각에게 나도 모르게 점점 끌렸다.
“근데요, 입고 계신 청바지는 요즘 보기 드문 스타일 같은데 직접 사셨나요?”
디스코 형의 청바지를 본 기억이 어렴풋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는데, 다시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신다.
“이거, 작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청바지야.”
“아, 그랬구나. 그래서, 더 눈에 띄었나 봐요.”
“이래 봐도, 이거 ‘리바이스’야.”
하루 종일 정신을 혼미하게 했던 숱한 고백과, 박테리아 미생물에서 명품 리바이스 청바지를 아우르는 매혹적인 4차원 화술, 게다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이 묘한 느낌은 무엇이란 말인가!
추신: ‘찌르르’하며 산책한 그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교회 앞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올립니다. 저를 만나러 온다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오기 며칠 전에 받은 검은색 반코트와 ‘리바이스’ 디스코 스따알~ 청바지를 주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