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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혈성 심질환

갑자기 자기 좀 봐달라고 쿵쾅거리는 걸까

by 그레이스

부재중 전화가 한 통 와있다. 번호를 보니 병원이다. 덜컥 겁이 난다. 도서관 근무 중임을 핑계 삼아 다시 전화를 걸고 싶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진동이 울린다.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병원인데요. OOO 씨 맞으시죠?

“네”

“지난번에 수술 전에 하는 검사 몇 가지 하셨는데, 심전도 그래프에 이상 소견이 있어요. 그래서 심장 초음파랑 추가 검사 몇 가지 하셔야 하는데요.”

“지금까지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갑자기 그럴 수도 있나요?”

“정확한 건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고요. 또, 신장 쪽에 결석처럼 보이는 것도 있어서, 그것도 추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추가 검사 결과를 확인한 후에 수술을 할 수 있어요.”


손이 덜덜 떨린다. 내 몸 구석구석이 이렇게 아프고 있었는데 내가 몰랐나 싶다. 병원 예약을 잡고 전화를 끊고 멍하니 서있으니 사서 선생님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다.


“점심 먹은 게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괜찮아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로 돌아와 책 정리를 잠시도 쉬지 않고 했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허혈성 심질환의 이상소견’이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인지 싶어 검색을 해봤더니, 혈액을 공급해 주는 관상동맥이 좁아지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기름기 많은 물질이 혈관 벽에 쌓이면 점차 혈관이 좁아지게 되며, 이로 인해 심장으로 가는 혈액이 모자라서 관상동맥이 좁아지는데 영향을 주고 그 요인에는 고지혈증, 흡연, 고혈압, 당뇨병, 비만 등이 있다고 한다.

나는 고지혈증도 아니고 흡연자도 아니고, 또 고혈압도 당뇨병도 없고 비만도 아니다. 아니 도대체 왜 나한테 또 이런 병이 생긴 걸까.


그러다 문득 내가 내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나 생각해 봤다. 학창 시절 달리기 시합을 할 때 출발 신호를 듣기 전에 들었던 두근거림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쿵쾅거리는 느낌이 싫었다. 거짓말을 했을 때의 쿵쾅거림이나 교실에서 발표하기 전에 느꼈던 쿵쾅거림이 싫어서 거짓말도 하지 않고 발표도 잘 안 했다.


그런 나를 소극적으로 보았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웅변을 배웠었다. 웅변을 배우고 나서 독후감 발표회나 웅변대회를 나가는 일이 잦아졌고, 가끔 받아오는 상장에 부모님은 흐뭇해하셨지만, 나는 무대에 오르기 전의 그 심장 뛰는 소리가 여전히 유쾌하지 않았었다.


그때부터 내 심장이 고장 나기 시작했을까? 심장의 콩닥거림이 싫어서일까. 이상하게 스릴 넘치는 영화도 보기 싫었고, 가슴 뛰는 사랑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첫사랑은 남편이다. 내가 남편을 사랑한 이유는 엄청난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없어서였다. 남편은 내가 나를 애써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줬다. 도서관에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잠든 모습을 보여줘도 스스럼이 없었고, 지저분한 내 방을 그대로 보여줘도 창피하지 않았다. 그 편안함이 좋았다. 막내로 자란 나에게 언니 오빠들이 그러했듯 내 요구사항을 하나하나 잘 들어줬고, 내가 약속시간에 늦어도 짜증을 내거나 화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애써 거짓말을 하거나 둘러대지 않아도 됐다.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언제든지 나를 용서해 줬다.


결혼을 하자고 조르지도 않았고, 무엇이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나 가고 싶어 하는 곳에 반대하지도 않았다. 나를 쿵쾅거리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을, 내 심장 박자에 딱 맞는 사람 같아서 그렇게 결혼을 했다. 이처럼 지금까지 내 심장은 한 번도 나댄 적이 없는데, 갑자기 자기 좀 봐달라고 쿵쾅거리는 걸까. 심장아 제발 지금까지처럼 있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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