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선생님한테 행운을 줄 거예요!”
책 읽기는 나의 유일한 도피처다. 생각할 게 많거나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마음에 번뇌가 찾아올 때마다 탈출구였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시간을 때워야 할 때도 독서만큼 좋은 게 없다. 내가 읽는 책 속에서는 난 언제나 연출자나 감독이 된다. 그래서일까 이미 책으로 읽은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아들을 낳고 나서 육아휴직 마치고 복직하려고 할 때, 아들이 많이 아팠었다. 육아휴직을 연기하고 나서 다시 복직이 다가올 때도 아들은 입원을 했다. 그래서 난 퇴직을 결심했다. 그때 마음속의 갈등을 잠재워 준 것도 책이었다.
나는 살면서 세 가지 자원봉사를 했었다. 첫 번째는 장애 환우들의 이동을 돕는 활동이었는데, 학교 선배의 권유로 시작했다. 아직 어렸을 때여서인지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오래 하지 못했었다.
두 번째는 회사 동호회에서 하는 영아 일시 보호소 자원봉사였다. 아이들을 예뻐하는 마음만 있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 자체도 어려웠지만, 일을 다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앞치마를 벗으면 아이들이 가지 말라며 내 발목이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고, 집에 와서도 며칠이나 그 아이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슬펐다.
세 번째는 도서관 봉사활동이다. 나는 도서관 자체가 너무 좋다. 새 책에 라벨지를 붙일 때마다 책에서 나는 냄새가 좋고, 첫 페이지를 펼칠 때 나는 쩌억 하는 소리도 좋다. 반납된 책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일, 방문객들의 문의로 책을 찾아서 건네주는 일도 좋다. 책장 사이사이에 꽂힌 책들을 보면 나무 사이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렇게 나에게 딱 맞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자원봉사를 찾아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했던 일이 이제 십 년이 되어간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도서관에 장애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채용된 선생님이 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리긴 하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일을 하는 그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다. 도서관 일을 꼼꼼하게 잘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해서 도서관 이용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식물 가꾸기도 좋아해서 도서관에 있는 화분은 거의 다 이 선생님이 돌보고 있다.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을 사서 화분에 올려두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 이걸 알아채주면 환하게 웃어준다. 도서관 곳곳에는 선생님의 손길이 느껴진다.
도서관에서는 몇 개월 단위로 자원봉사를 위촉한다. 그 선생님이 자원봉사 신청서를 들고 내게 팔랑팔랑 다가온다.
“선생님~ 내년에도 도와주실 거죠! 저는 선생님 없으면 안 돼요!”
신청서를 내게 건네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흐른다. 나도 모르게 이번이 마지막 자원봉사라는 걸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십 년 넘게 해 온 이 일을, 내가 참 좋아했던 이 일을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게 나를 슬프게 한다.
“알레르기가 생겨서 그런지 요새 자꾸 눈물이 한 번씩 나네요”
선생님이 내 눈물에 당황하는 것 같아 보여 가짜 재채기를 여러 번 하면서 말한다.
“선생님~ 아프지요? 요새 선생님 생각이 많아 보였어요. 이게 선생님한테 행운을 줄 거예요!”
내 거짓말을 알아챈 건지, 그 선생님은 웃어 보이면서 내 손에 코바늘로 뜬 네잎클로버를 올려놓는다.
가족을 제외하고는 내 주변에서 내가 아프다는 걸 알아차린 유일한 분이다. 나를 생각하면서 한 땀 한 땀 네 잎클로버를 만들었을 그 마음이 느껴져 온몸이 따뜻해진다. 도서관이, 책이 맺어준 이 고마운 인연에 감사하다. 이 네잎클로버가 나에게 좋은 기운을 줄 것 같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