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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다독

나는 이 사람들에게 참 따사로운 다독임을 많이 받았다.

by 그레이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언니 찬스를 참 많이도 썼다. 나의 예쁜 조카들에게도 일하는 언니들을 대신해 종종 엄마가 되어주었다. 조카 중 한 명은 결혼할 남자에게 “나는 엄마가 셋 있어”라는 말로 이모들이 자신의 성장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말을 대신했다고 했다.


언니들은 나보다 결혼도, 출산도 빨랐기에 조카들과 우리 아이들은 나이 차이가 꽤 났고, 나에게는 우리 아이 또래의 육아 동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또래 엄마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문화생활을 찾다가 그림책을 찾아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모임에 가입했다. 우리 아이들 또래의 엄마들로 구성된 모임이었다. 우리는 칼데콧 상을 받은 책도 공부했고, 그림책 지도사, 책놀이 지도사 등 다양한 수업을 함께 들으며 공부도 하고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도 함께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의 관심사도 점차 그림책에서 청소년 필독서로 변해갔다. 지금은 매주 화요일에 정해진 책을 읽고 책 내용과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동아리의 모습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마지막 이벤트’라는 책을 읽고 동아리에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마지막 이벤트’는 아동 문학에서 보기 드문 죽음과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세 살 주인공 소년 영욱이가 한 집에 살던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겪으며 죽음에 대해 알아가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긴 세월을 때로는 훌륭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실수투성이로 살아낸 모든 인생 선배들의 따스함과 사랑을 기억하며 앞으로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아이들을 위한 다독임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는 각자의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산을 좋아하니까, 아들에게 내가 가본 산 중에 가장 좋은 산에 뿌려달라고 할 거야.”

“언니 죽으면 아들도 80대일 텐데, 산에 올라갈 힘도 없겠다. 엄마 유언 지켜주려다 아들 잡겠네!”


그 말에 우리는 한 바탕 다 같이 웃었다.


“나는 예쁜 엽서를 두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나씩 적어달라고 할 거야. 그래서 그 엽서들로 관을 가득 채울 거야. 천국 가는 길에 하나씩 읽어야지.”


“나는 장례식은 마음대로 해도 되고, 묘비명에 꼭 ‘즐거웠다. 행복했다. 다시 만나자.’라고 적어달라고 할 거야.”


우리는 그 묘비명이 참 좋다며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나는 가족들과만 보내고 싶어. 나를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늘 어딘가에 살고 있게 하고 싶어. 그래서 가족들한테만 알려졌으면 좋겠어.”


“나는 장례식장에 노래방 기계를 놓아야겠어. 평소에 제일 좋아하는 애창곡 하나씩 꼭 불러달라고 할 거야”

“내가 아모르파티 부를게! 그게 들리면 나인 줄 알아”

“나는 그럼 김창완의 청춘!”

“야 살만큼 살다 가는 건데 신나는 노래로 불러줘~”

“그래 그럼 엄정화 페스티벌은 내가 부를게!”

“좋아, 나는 100살까지 살다 갈 거니까 나보다 먼저 죽기 없이야! 나 먼저 보내고, 그리고 노래 다 불러주고 그러고 가는 거야. 다들 알았지?”


우리는 그때, 모두가 다 건강하게 오래 살다 가는 인생을 생각하며 장례식 이야기를 했었다. 누구도 갑자기 불현듯 우리 곁에 없을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장례식이 슬픔으로 채워지지 말고, 좋은 추억으로 가득 차있는 날이길 바라본다.


우리 동아리 이름은 ‘다독다독’이다. 사실 책을 많이 읽자는 뜻은 조금이고, 책으로 함께 치유받고, 서로를 다독여주려고 지은 이름이다. 이름처럼 나는 이 사람들에게 참 따사로운 다독임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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